(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배우 백지원은 올해로 데뷔 24년차에 접어들었다. 1996년 연극으로 데뷔해 지난 2014년 안판석 PD의 드라마 '밀회'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풍문으로 들었소' '애인있어요' '매드독' '훈남정음' '친애하는 판사님께' '남자친구' '트랩'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변신의 귀재'로 호평받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탄탄한 내공을 쌓아온 그에게 '평택 십미호 김수녀'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남게 됐다.
백지원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SBS '열혈사제'에서 구담성당의 주임 수녀 김인경으로 활약했다.
매 작품마다 연기 변신을 거듭하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입증한 백지원이지만, 데뷔 24년차에 들어서기까지 배우로서 고민은 계속돼왔다. 배우로서 한 인물의 삶의 온전히 스며들기 위해 어떠한 그릇을 갖출지 매 연기마다 고민이 뒤따랐다. 데뷔 초기 "배우 백지원입니다"라고 소개하기 어려웠던 그는 이젠 "배우로서 자격이 50% 정도 올라왔지만 여전히 50%가 부족하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연기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이 진행형이라는 백지원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열혈사제' 종영 소감은.
▶끝났다는 게 별로 실감이 안 된다. 꽤 오랜 시간동안 촬영을 했기 때문에 인물을 보내는 것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특히 인물을 정말 잘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배운 것도 많고 곁에 동료들도 많이 남고 해서 특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여운을 오래오래 안고 가면서 앞으로 연기하는 데 있어 발판으로 삼고 싶다.
-'열혈사제' 인기가 뜨거웠다. 드라마 시작 전 이 같은 인기를 예상했는지.
▶주인공 배우들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잘 될거라 생각했다. 배우들간의 호흡들이 너무 좋았다. 누구 하나 모난 사람 없이 서로 다 챙기면서 끌고 가는 모습을 보여줬고, 모두가 한 배를 같이 타고 가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그런 믿음이 있어서 시청률과 상관 없이 좋은 작업이 되겠다 싶었는데 눈에 보이는 결과도 잘 나와 기분이 좋다.
-'열혈사제' 인기는 언제 실감했나.
▶가깝게는 지인 분들이 먼저 연락을 주더라. 같은 동료 배우들이나 무대 쪽 배우들이 평소엔 특별하게 피드백을 안 하는 편인데 그들의 주변에서 '열혈사제'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고 하더라. 개인적으로 모임에 가면 드라마 잘 보고있다는 얘길 많이 해서 정말 드라마를 많이들 보시는구나 싶었다.(웃음)
-배우들이 본 '열혈사제' 인기 비결은.
▶일단 시원 시원했다. 답답한 현실에 비해서 정의가 실현되는 부분이 시원하게 그려지지 않았나 한다. 물론 드라마 안에서도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이야기가) 힘들게 풀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시청자 분들이 대리만족을 하시지 않았나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연기를 잘 하니까.(웃음)
-'열혈사제' 김인경 수녀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미팅을 통해서 합류하게 됐는데 제작자나 감독님이나 작가님, 주연배우들이나 그 전에 작업을 해서 인연이 있었던 분들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해서 미팅을 해보고 싶었다. 또 수녀님 역할도 한 번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두말하지 않고 성직자의 역할이면 해보겠다고 했다. 기존의 드라마에서 보여주던 수녀님의 이미지는 온화하거나 딱딱한, 단선적인 이미지로만 그려졌었는데 '열혈사제' 김수녀는 굉장히 인간적인 인물이더라. 후반으로 갈수록 주위 사람을 만나면서 변화해가는 지점이 보여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버럭버럭 큰소리치는 그런 모습들이 교구나 실제 수녀님들 입장에서는 괜찮으실까 걱정도 많이 했다. 누가 되는 게 걱정됐는데 다행히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주시더라.
-김인경 수녀에겐 타짜 '평택 십미호'라는 반전 과거가 있었다.
▶작가님이 재미있게 써주셔서 과분했다. 드라마 중반부에 가서야 김수녀에게 이런 과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땐 (연기가)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제게 이렇게까지 서사를 주시는구나 감사했고, 한편으론 '저를 뭘 믿고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주셨나' 생각하기도 했다. (웃음) 그래서 작가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개인적으로 제가 자주 연락드리진 못했지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평택 십미호' 반전 과거가 드러나면서 화투 기술을 배우기도 했을텐데.
▶그때는 이미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을 준비할 시간이 많진 않았다. 그냥 그저 열심히 내리쳤다. (웃음) 소리가 딱딱 나게 해야겠다 싶어 힘껏 내리쳤는데 김남길씨가 열심히 가르쳐줬다. (이)하늬씨도 영화 '타짜-신의 손'을 촬영한 적이 있어서 '언니 손에 힘을 빼고 내리쳐야 해'라면서 열심히 가르쳐주더라. 두 배우들 사이에서 열심히 배웠다. (웃음) 주연배우들까지 그런 도움을 주더라. 배우들이 뭔가 어려워 하고 있으면 '뭐가 문제야' 하면서 가르쳐준다. 정말 너무 고마웠다.
- '평택 십미호'로 비주얼 변신도 시도했다. 반응이 뜨거웠는데.
▶주변에서 센 캐릭터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웃음) 비주얼이 큰 반전이라고 하셨는데 워낙 수녀님의 이미지가 경건했기 때문에 같은 작품 안에서 극적으로 대비돼서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재미있게 봐주셨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다.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받아주신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런 반응들이 자극이 돼서 더 다른 모습으로 연기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겠구나 했다.
-'열혈사제' 뿐만 아니라 '훈남정음' '친애하는 판사님께' '남자친구' '트랩'까지, 최근 다양한 변신을 시도해왔다.
▶저는 제게 역할을 주시면 마다하지 않는다. 저를 선택해주신 데 대한 감사한 마음이 크기 때문에 운이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게도 조금씩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순서대로 오고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기본 베이스가 심성이 따뜻한 역할들이 많이 왔다. '훈남정음'에선 후배를 보듬어주고 아끼는 상사이자 워킹맘을 연기할 수 있었고 '남자친구'에선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엄마로 연기할 수 있었다. 조연이다 보니 주연보다는 필모그래피를 더 쌓을 수 있게 된다. 현재로선 배우 개인의 욕심을 갖기 보다 배우로서 내실을 다지면서 천천히 가고 싶다.
-평택 십미호가 등장한 분량에서 존재감이 유난히 돋보였다.
▶드라마 안에서 조연들은 사실 기능적인 위치에 있다.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연으로서 그 인물을 진심으로 안고 가려는 마음을 가지려 하는 것 같다. 잘생기거나 예쁘거나, 잘나지 않은 삶도 많다. 이런 삶, 저런 삶, 여러 삶들이 많다. 그런 삶을 제가 아니면 이해해줄 사람이 없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던 것 같다. 시청자 분들은 이 인물이 보기 싫다 하실 수 있지만 저만큼은 이 인물을 안고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해왔다.
-데뷔 초기 당시와 '열혈사제'를 마친 지금까지, 배우로서 가장 크게 변화된 점은 무엇인 것 같나.
▶데뷔 초반에는 어디 가서 '저는 배우입니다'라는 말을 제 입으로 못했었다. 배우라는 존재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배우라고 얘기하기엔 자격이 부족한 것 같고 모자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다른 인물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까, 연기를 할만한 자질이 있나 등을 생각하니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배우로서 그릇이 온전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제서야 '저는 배우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입은 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자격이 50% 정도 올라온 것 같다. 50%는 아직 부족하다.
-연기에 대한 진정성과 배우로서 마음가짐에 대한 고민이 깊은 것 같다.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는 배우라도 내면에서 그릇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어떤 인물을 담기 위해, 이런 저런 삶을 담기 위해 필요한 그릇을 갖추기 위해서 배우는 늘 발전해야 한다. 그렇게 그릇을 다듬고 넓혀가야 그 안에 연기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충분히 담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한 사람으로서도 살아가는 모습과 맞닿아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의 얼굴에 삶과 성격이 다 보인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무섭고 앞으로 내가 어떤 얼굴이 돼 있을까 걱정도 크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얼굴도 바뀔 것이기 때문에 매일 고민하고 채워가는 사람이 돼야겠구나 싶다.
-연기 재료는 어떻게 채우나.
▶여러 작품들을 감상한다거나 가벼운 책부터 우울하고 어둡거나 무거운 책까지 보는 편이다. 선호하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음악도 골고루 듣는 등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느끼려 한다. 낯선 감정이 들 때도 그에 대해 들여다 보여 한다. 매순간 느끼는 것들 하나하나가 연기의 재료라고 생각한다.
<[N인터뷰]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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