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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정리뷰] 이창동 원작 소설보다 낫다…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뉴스1

입력 2019.05.19 10:03

수정 2019.05.19 10:10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뉴스1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뉴스1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뉴스1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뉴스1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뉴스1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뉴스1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뉴스1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뉴스1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제공 두산아트센터) © 뉴스1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제공 두산아트센터) © 뉴스1


내밀한 연기와 촘촘한 공간 디자인 통해 소시민의 공허함 잘 살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내밀한 연기와 촘촘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이에 원작자 이창동이란 부담감을 털어내고 소시민의 공허함을 오롯이 드러낸다.

한마디로 청출어람이다. 원작소설과 연극을 감히 비교하면 쇄를 거듭하면서도 상실·절망 따위의 추상어들을 남발하고 일식집을 '일십집'(160쪽)이라고 오기한 채로 절판을 맞은 구멍투성이의 원작보다도 연극의 표현력이 꼼꼼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부터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초연한 이 연극은 1991년 문학과사회 겨울호를 통해 발표됐으며 이듬해 동명의 소설집 표제작으로 세상에 나온 이창동의 중편소설을 윤성호가 각색하고 신유청이 연출을 맡았다.



이창동은 2000년대 '오아시스, 박하사탕, 초록물고기' 등을 발표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히지만 1990년 초반만 하더라도 문단의 유행에서 빗겨난 작품을 간간히 발표하는 직장인 소설가 중 하나였다.

1954년 대구 태생인 이창동은 경북사대 국문과를 졸업한 이후 야구부가 유명한 서울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당시 이 학교에선 동료 국어교사인 이수호 현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전교조 가입으로 구속됐으며, 최근 유치원 비리를 공개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 등 재학생들이 전교조 동조 시위를 펼치는 과정에서 전고협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원작자의 상황을 강조하는 이유는 '녹천에는 똥이 많다'가 이창동의 체험과 주변환경을 원재료로 삼아 작가적 상상력을 향신료 수준으로 첨가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홍준식(조형래)은 30대 중반 고등학교 교사다. 그의 별명은 서무과에서 심부름하던 급사 출신이지만 나중엔 교장까지 할 것이라는 뜻을 담은 '급장'이다. 그는 전교조 사태 이후의 교무실 동태를 밀고하는 등 악착같이 살아간다.

홍준식은 아파트 청약에 9번 만에 당첨돼 녹천역 인근의 23평형 새 아파트로 이사한다. 서민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내집 마련에 성공한 준식 앞에 이복동생 강민우(김우진)가 수배 중임을 숨기고 10여 년만에 나타난다.

준식의 질투심은 연극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그는 아내 정미숙(김신록)이 갑자기 함께 살게 된 강민우에게 마음을 뺏겼다고 의심한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서 오셀로가 아내 데스데모나의 불륜을 의심하는 것처럼 강력하다.

그럼에도 강민우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이 균열을 드러내는 원작의 설정은 북한의 교조주의적 계몽소설을 연상케 할 만큼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원작의 유치함을 자연스럽게 상쇄하는 것이 배우들의 질펀한 연기와 세련된 무대 디자인이었다.

주인공 조형래 배우는 다른 출연진이 다양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또하나의 무대이자 도화지였다. 그는 홍준식 1인칭 시점으로 진행하는 연극의 특성상 거의 모든 장면에서 무대에 있어야 했다. 그가 녹천역 주변 똥구덩이에 넘어져서 절규하거나 죽은 금붕어를 들고 귀가하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이다.

연극은 교사 홍준식, 아내 정미숙, 이복동생 강민우를 제외한 모든 인물을 소리들(송희정, 박희은, 이지혜, 우범진, 하준호)로 처리해 1인다역으로 연기한다.

특히 송희정은 시장 행상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공장에서 빵을 몰래 훔치는 등 악착같은 생활력이 돋보이는 준식의 어머니와 다른 역할인 술집 황금연못의 심드렁한 작부 미스장 등을 잘 연기했다. 그가 외치는 "맛나고 싱싱한 김밥이나 오뎅"은 재래시장에서 흔히 듣던 바로 그 절창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무대다. 연극은 홍준식의 새 아파트를 베란다부터 현관까지 길게 펼쳐놓은 듯한 무대 위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박상봉 등 디자이너들은 아파트 실내가 녹천역 주변 공사현장, 교무실, 시장, 버스, 술집 등으로 자연스럽게 바뀌도록 설계했다.
행복의 상징이었던 새 아파트는 파란색 조명 속에서 산소가 부족해 질식사한 금붕어들이 떠 있는 비닐봉지와 겹치게 된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와 세련된 무대 디자인으로 원작보다 더 소시민의 공허함을 이창동스럽게 잘 살려냈다.
공연은 오는 6월8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