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혁신의 시대, 기업과 정부가 할일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8 16:42

수정 2019.05.28 16:42

[이구순의 느린 걸음] 혁신의 시대, 기업과 정부가 할일

1년간 미국에 살다 올 일이 있어 짐을 싸는 내게 "큰 돈은 못 주고 커피 좋아하니 스타벅스 카드라도 채워줄게"하며 3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스타벅스 카드로 선물한 친구가 있었다. 눈물 날 만큼 고마웠다. 미국 공항에 내리자 마자 찾아간 스타벅스에서 그 고마움은 낭패감이 됐다. 11시간 넘게 비행기를 탔으니 익숙한 커피맛이 간절했는데, 한국에서 산 스타벅스 카드로는 미국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살 수 없단다. 스타벅스 카드를 국경없이 쓸 수 있도록 해주면 안되나.

작년부터 스타벅스가 암호화폐를 스타벅스 선불카드와 연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나와 같은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세계 곳곳에 있었구나 싶다.
스타벅스는 그 문제를 암호화폐로 풀려고 하는구나 싶다. 한국에서 산 스타벅스 카드를 그들만의 환율로 계산해 스타벅스 코인으로 환산해 두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카드 하나로 익숙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될 것 같다.

비트코인 값이 1년만에 다시 1000만원 지붕을 뚫었다. 지난 2017년과 2018년의 암호화폐 급등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스타벅스나 삼성전자처럼 서비스와 상품의 실체가 있는 기업들이 상승장을 이끌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등락이야 있겠지만 이번 상승장이 거품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감이 도는 이유다.

그 기대감에 우리 스타트업들이 함께 올라탔으면 한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한번에 쉽게 투자금을 모으겠다며 계획서 달랑 들고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기업은 가려낼 수 있는 눈을 갖춰줬으면 한다. 기업들은 세계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스타벅스 카드 같은 스마트한 서비스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기술로 자연스럽게 수수료 깎아 놓은 신용카드 서비스가 나왔으면 한다. 그동안 아무도 값을 쳐주지 않던 내 개인정보에 가치를 매겨주는 서비스를 쓰고 싶다. SNS에 열심히 글과 사진을 올리면 작으나마 내 수고를 인정해주는 서비스를 보고 싶다.

탈중앙화니 무슨 코인이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들이대며 소비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았으면 한다. 기술의 지향점은 서비스 속에 녹여두고, 소비자는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직관적인 서비스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지난 2년간 국내에도 수많은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서비스와 상품을 개발해 왔다. 올 하반기에는 서비스들이 시장에 나올 채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우리 스타트업들이 한번 점검했으면 한다. 소비자가 한 눈에 반응하는 새롭고 편리하고 싼 서비스인지 말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진입하고 있는 비트코인 1000만원 시대에 우리 스타트업들의 이름을 나란히 보고 싶다.

정부는 혁신산업 지원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으면 한다. 혁신을 인증하려 들지 않았으면 한다. 정부의 직접 지원은 한편으로는 달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과 시장에 독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정부는 사업 못하게 막지 않는 것으로 정부의 역할을 한정했으면 한다.

대신 이유없이 법률적 근거없이 눈짓 한번으로 사업 못하게 막으면 안된다.
혁신기술과 서비스는 시장이 판단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이지 정부가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