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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외양간부터 고치자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09 17:14

수정 2019.06.09 17:14

[윤중로] 외양간부터 고치자

일손을 놓은 국회 공전 상태가 수개월째다. 국민혈세로 세비를 충당받고도 기본적 책무를 외면하는 정치권에 대한 혐오증이 갈수록 더해진다. 민생법안은 물론 경기부양을 위한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도 요원한 상황이다. 민생안정을 위해 법을 만들고,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과 의무를 직무유기하고 있다. 차라리 일정 냉각기간이 지나면 국회 정상화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국회정상화법'을 제정하라. 정치는 생물이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수반한다.
이념과 가치관, 당리당략을 놓고 여야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느 현안에 대해 여야가 항상 동의한다면 그건 정치가 아니고 아마 신선놀음일 게다. 하지만 당리당략도 정도가 있다. 여야는 각자 지지층과 중도층을 겨냥, 다양한 민생현안에 대해 본능적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정당 속성상 권력 쟁취가 제1의 목표인 만큼 표심 얻기가 최우선 과제다. 이러다보니 대중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로 흐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票(표)퓰리즘'으로도 불린다.

민생보다는 당리당략을 우선시하는 작태를 보면 한심하기까지 하다. 정치행위를 계량화할 순 없지만,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만큼 그 위선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여야는 '갈등→냉각기→타협→정상화'라는 생물적 사이클을 외면한 채 오로지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 갈등과 충돌이 빚어질 때마다 '양보와 타협을 통한 생산적 정치 구현'이라는 정치의 기본 명제조차 지키지 않는 이 갈등의 향연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집권여당의 책임이 더 크다. 권력을 획득한 여당 입장에선 민생안정이 가장 중요한 의제인 만큼 '양보의 마지노선'을 없애고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시중에는 새로 원내사령탑이 된 이인영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첫 시험대에 올랐지만 청와대와 여권 수뇌부의 반대로 여야 협상이 막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원내협상을 총괄하고 리드하고 있는 이 원내대표에게 '협상의 재량권'을 대폭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당내에서 나온다. 여야 4당의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추진에 반발, 장외투쟁을 지속해온 자유한국당도 책임이 크다. 국무총리 출신인 황교안 대표의 강한 야성(野性)을 표출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도 거뒀다. '투쟁만이 살길'이라는 해묵은 야당의 행동강령은 구문이 돼버린 지 오래다. 보다 '세련되고' '과감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당으로선 지금이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할 적기다. 더 이상 국회를 공전시키는 것은 '견제와 비판적 대안 제시'라는 제1야당의 방어기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정치적 실기가 될 수 있다. 앞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9일 취임인사차 방문한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민생과 국민을 위한 국회가 된다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되겠다"고 했다.
이 원내대표는 "말씀하신 그대로 국민 말을 잘 듣고 또 그만큼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경청하겠다"고 화답했다. 두 원내대표가 제발 허심탄회한 밥 자리에서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소'(민생) 잃기 전에 '외양간'(국회정상화)부터 고쳐야 한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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