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연설 프랜시스 거리 WIPO 사무총장
최근 글로벌 IP시장 폐쇄적..투자금액 3년새 13% 축소..제조기업 자국 회귀현상 늘어나
최근 글로벌 IP시장 폐쇄적..투자금액 3년새 13% 축소..제조기업 자국 회귀현상 늘어나
프랜시스 거리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사무총장이 "미·중 무역전쟁으로 격화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 지식재산(IP) 생태계의 개방성을 저해하고 국가 간 기술장벽만 높이고 있다"며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우려했다. 이 때문에 기술강대국 중심의 IP시장 혼탁을 막기 위해서는 국경을 초월한 IP 표준규약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리 WIPO 사무총장은 14일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9회 국제 지식재산권 및 산업보안 컨퍼런스 기조연설을 통해 글로벌 IP 시장의 급속한 팽창 현상을 소개했다.
거리 총장은 "한국의 경우 전 세계 특허출원 5위권의 강대국"이라며 "현재 상표권만 보더라도 WIPO의 등록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등 IP 확산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흐름 속에서 파이낸셜뉴스가 '신보호무역주의 시대, IP가 나아갈 길'을 주제로 국제포럼을 마련한 건 시의적절하다"고 했다.
거리 총장은 최근 글로벌 IP시장 흐름이 1990~2000년대와 비교해 폐쇄적 징후들이 두드러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투자규모가 3년 연속 하락세"라며 "투자금액으로는 1조3000억달러 정도로 3년 새 13%가 축소됐는데 보호무역주의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전면전으로 치달은 미·중 무역전쟁의 중심에는 기술보호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거리 총장은 "미·중 무역분쟁은 세계 2대 강대국의 이슈이지만 세계적인 문제이며 양자 간 긴장관계를 이미 뛰어넘었다"며 "정치적 요인들이 많이 개입됐지만 그 중심에는 기술이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진국 제조기업들은 1990~2000년대에는 다자간 무역협상을 통해 시장이 개방되면서 저기술·노동집약적 산업들은 비용절감 등의 이유로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이 확산됐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기술경쟁 심화로 이들 제조기업들이 자국으로 회귀하는 '리캡처링(recapturing)'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에 따르면 일본 기업 30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7년 처음으로 '중국→일본 회귀' 기업 수가 '일본→중국 진출' 기업 수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리 총장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변되는 과도한 기술보호 경쟁은 전 세계적 IP 개방성을 후퇴시키는 만큼 국경을 초월한 국제표준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급변하는 IP시장 환경에서 개방성을 지키고 최대한 이점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며 "IP 개방을 너무 많이 하면 국가적 차원의 손해이고,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리면 개방성이 피해를 입는 만큼 균형있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데이터 분야가 최근 IP시장을 이끄는 만큼 이 부문을 중심으로 국가 간 IP 정책의 간극 좁히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거리 총장은 "1950년 이후 AI 특허출원의 50%가 지난 5년간 이뤄졌다"며 "AI는 컴퓨팅 등 산업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고, 그 기반은 데이터"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데이터 자유화를 장려하는 반면 중국, 러시아, 인도는 데이터센터의 현지화를 고집하는 등 국가 간 차이가 심해 국가적 공조 차원의 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그런 측면에서 거리 총장은 IP의 본질이 기술적 제약이 아닌 혁신 장려와 교류에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결국 신보호무역주의 시대에 IP의 미래는 세계적 해답을 찾는 게 핵심"이라며 "쇄국주의와 국익 우선주의에 매몰돼 국제적 규칙 마련이 늦어지는 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이병철 팀장 오승범 최갑천 차장 김은진 김용훈 성초롱 조지민 권승현 기자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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