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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에도 공사실명제가 있었다"

김원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22 05:59

수정 2019.06.22 05:59

면천읍성에서 각자성돌 발견...충남 당진시 안내판 설치
충남 당진 면천읍성 각자성돌 안내표지판.
충남 당진 면천읍성 각자성돌 안내표지판.

【당진=김원준 기자】500여 년 전 조선시대에도 공사의 책임의식을 높이기 위한 공사실명제가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2일 충남 당진시에 따르면 현재 복원 사업이 추진 중인 면천읍성(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제91호)에는 축조시기와 부역군현을 파악할 수 있는 각자성돌이 존재한다.

각자성돌은 공사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려는 목적으로 연도와 축조구간, 책임 군현 등을 새겨 놓은 돌이다.

이는 해당 구간에서 공사 부실이 발생하면 해당 군현에서 보수를 책임진다는 일종의 표지로, 오늘날 공사실명제와 목적이 같다.

조선 세종 때인 1439년(세종 21년) 왜구 방어를 위한 읍성 축조 계획에 따라 건설된 면천읍성은 조선 초기 면천 지역의 행정중심지를 보호하기 위해 돌로 쌓은 석축성이자 당시 면천면 소재지의 대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평지성이다.

면천읍성의 축조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 남아 있으며, 읍성의 규모는 문종실록에 자세히 기록돼있다.
이 외에도 여지도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여러 문헌에서 구조와 시설물들이 확인된다.

또한 여지도, 해동지도, 면천군지도 등 고지도에서도 면천읍성의 형태와 내부 배치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1872년 제작된 면천군지도의 경우에는 동헌과 내아 객사 등 건물의 위치와 규모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면천읍성에서 발견된 각자성돌은 모두 3개인데, 성돌에 새겨진 기미년(己未年)은 세종 21년(1439년)으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3개의 각자성돌에는 서치성의 ‘기미년 옥천시면 장육십척 사촌( 己未年 沃川始面 長六十尺 四寸), 서벽의 석성종면(石城終面), 서치성 끝 지점의 기미년 옥천 종말(己未年 沃川 終末), 기미년 결성수공 사십육척 팔촌 시면(己未年 結城受工 四十六尺 八寸 始面)'이라고 각각 새겨져 축조시기 외에도 어느 군현이 축조했는지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옥천은 오늘날 충북도 옥천군, 석성은 충남 부여군 석성면, 결성은 충남 홍성군 결성면을 나타낸다.

당진시 관계자는 “축조시기와 축조군현의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는 각자성돌을 알리고자 시에서 안내판을 설치했다”며 “면천읍성은 우리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역사적으로 중요성과 가치가 풍부한 만큼 앞으로 알려지지 않은 면천읍성의 역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당진시는 지난 2007년부터 내포문화권 특정지역 개발계획의 하나로 292억 원을 투입,면천읍성 복원사업을 추진 중에 있으며, 최근에는 충청유교문화권 광역관광개발사업이 확정돼 면천읍성을 중심으로 여민동락 역사누리사업을 2024년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kwj5797@fnnews.com 김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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