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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신뢰 잃어가는 중국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21 16:50

수정 2019.06.21 16:50

[월드리포트] 신뢰 잃어가는 중국

지난 1997년 156년간 영국의 식민통치를 끝내고 중국으로 반환을 앞둔 홍콩은 축제 분위기였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유례없는 20세기의 사건을 앞두고 중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영화 '아편전쟁'이 개봉돼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영국 지배에 익숙해 있던 시민들에게 중국인 정체성을 찾자는 분위기도 확산됐다. 기업들은 중국이 50년간 약속하기로 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믿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기대를 걸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지난 2011년 홍콩에 출장 갔을 때 만난 주재원은 현지 시민들이 점차 스스로를 홍콩인이 아닌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등 긍지가 커지고 있다고 당시 분위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다음 해 학교 교과서에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내용이 포함된 애국주의 교육이 추진되자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12만명이 반대운동을 벌여 무산시킴으로써 중국 대륙과는 여전히 생각이 다른, 강요되는 애국심보다 현실을 더 중요시하는 홍콩 시민들의 의식을 보여줬다.

2014년 홍콩 중심가가 79일간 점거된 우산혁명을 학생들이 주도했다면 이번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시위는 지난 16일 참가자가 중산층과 중장년층으로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시위에는 1997년 주권 반환 이후 가장 많은 약 200만명이 행진에 참가했다. 홍콩 인구의 약 3분의 1이 합세한 것이다.

홍콩이 국제금융 허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안전과 자유가 보장돼 자본들이 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 입법회가 추진하고 있는 송환법에 따르면 외국인들도 홍콩에서 중국으로 압송될 수 있어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의 부유층들은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걱정에 자산을 싱가포르 등 해외로 옮기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1842년에 영국이 청나라와 맺은 불평등한 난징조약을 지켜야 한다며 2년간 협상 끝에 1984년 중영공동선언문에 합의, 홍콩을 돌려받기로 했다. 그 대신 홍콩을 50년간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해 고도의 자치를 실시하게 하면서 자본주의와 사법제도 등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도 약속했다.

그러나 중국이 갈수록 약속을 깨면서 누려온 자유까지 침해하려 하자 홍콩 일부에서는 중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영국 국기와 옛 식민지 깃발이 다시 등장하고 축구경기 시작 전 중국 국가가 연주될 때 관중들은 야유했다. 그리고 우산혁명과 송환법 반대시위를 통해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드러냈다.

지금 중국은 궁지에 몰려있는 듯해 보인다. 외신들은 홍콩 입법부가 송환법 표결을 연기하고 캐리 람 홍콩 행정수반이 사과한 것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도 정치적 타격을 입혔다고 분석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공산당이 홍콩에 맞아 코피가 터졌다고 비유했다. 미국과 힘겨운 무역전쟁까지 치르고 있는 중국이 다음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참가국들로부터 홍콩의 자유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받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에서도 홍콩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뉴욕과 런던, 파리, 워싱턴 등 세계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린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에 대한 신뢰는 상당히 떨어져 보인다.
이번 시위를 취재하던 한 사진기자는 진압하는 경찰들에게 최루탄을 쏘지 말라며 이렇게 외쳤다. "여기는 아직 홍콩이지 중국이 아니다!" 이 기자는 홍콩인이 아닌 프랑스인이었다.
이제는 전 세계가 중국에 등을 돌린 것 같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글로벌콘텐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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