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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목소리 빠진 스포츠 개혁, 문제 있다! [김성호의 매직스피커]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22 14:59

수정 2019.06.22 14:59

[김성호의 매직스피커 3] 임다연 선수에게 듣는 현장 목소리
한국인은 4년에 한 번씩 엘리트 체육에 열광한다. 올림픽에서 활약하는 각양각색의 종목들과 선수들에 관심이 집중되고 그들의 이야기가 언론지면을 장식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세계적인 선수를 꺾고 기적을 쓰는 박태환과 김연아, 윤성빈과 팀 킴의 활약에 환호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4년에 한 번씩, 그나마도 메달을 따온 슈퍼스타가 아니면 조명 받지 못한다.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으며 어떻게 길러졌고, 이들이 걸어온 길은 어떠한지는 우리의 관심이 아니다. 한국인은 엘리트 체육의 결과만을 즐길 뿐 그 과정엔 관심이 없는 것이다.


한국 엘리트 체육계는 일대 변혁을 앞두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 두 차례에 걸친 권고안을 통해 체육시스템의 개혁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혁신위가 발표한 6가지 권고안 중 특히 두 가지, 소년체전 폐지와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은 태풍의 눈이 될 전망이다.

소외된 목소리를 심층적으로 듣는 매직스피커는 세 번째 인터뷰 주인공으로 22년차 수영선수이자 칼럼니스트 임다연 선수(경남체육회)와 만났다. 전문가로 부르기 좋은 교수직함도 없고 직접적인 피해당사자인 학생 엘리트 선수도 아니지만, 혁신위 개혁안과 관련해 그녀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풍부하게 담은 칼럼을 쓴 이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 체육계의 현실과 혁신위 개혁안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현장 목소리 빠진 권고안... '문제 있다'

회의석상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 제공=문화체육관광부
회의석상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회 위원장. 제공=문화체육관광부

혁신위가 학원스포츠를 정상화하겠다며 권고안을 발표한 데는 올해 초 촉발된 체육계 성폭력 논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 선수가 10대 때부터 코치로부터 상습 성폭력을 당했다는 고발로부터 촉발된 충격적 사건이었다. 이에 정부는 즉각 민관 합동으로 문체부 산하에 혁신위를 구성하고 스포츠 인권 분야 권고안과 학교체육 정상화 방안을 수립한다.

“혁신위에서 5월 7일에 1차, 6월 4일에 2차 권고안을 내놨어요. 6대 권고안을 발표했는데 현장에선 학습권 보장이랑 소년체전 폐지가 문제가 됐죠. 학습권 보장 안에 합숙이 안 되고 수업을 다 들어야 하고 주말리그로 바꾸라는 내용이 있고, 소년체전은 축전으로 바꿔서 엘리트 선수들과 학교 스포츠 클럽을 한 데 모아 즐기는 대회로 하라는 거였어요.”

혁신위가 밝힌 6대 권고안은 다음과 같다.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어떤 경우든 학생선수는 정규수업에 참여) △체육특기자 제도 개편(경기실적 중심 진학시스템을 경기력, 내신, 출결, 면접 등이 반영된 종합적 선발 시스템으로 전환) △학교운동부 개선(장시간 훈련 관행 개선 등) △학교운동부 지도자 개선(처우 개선 및 역량 강화 지원) △학생의 스포츠참여 확대(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 유도) △전국스포츠대회 개편(통합 학생스포츠축전으로 확대·개편)이다. 이 가운데 처음과 마지막이 현장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는 얘기다.

“합숙문제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한국의 인프라를 생각해야 해요. 수영을 예로 들면 미국과 일본을 많이 비교하는데, 일본은 도쿄에만 50m 풀장이 20개 정도 되죠. 그런데 한국은 전국에 정식규격 수영장이 단 2개. 대전과 광주뿐이에요. 25m 규격인 스포츠 센터에서도 선수들 훈련을 반기지 않죠. 코치가 소리를 지를 수 있고 호루라기를 불고 어린애들이 힘들게 하는 게 보기 싫어서 하는 분들도 있고, 이런 저런 이유로 항의가 많아서 선수들 훈련을 반기지 않아요. 갈 데가 없죠. 합숙 같은 경우는 진천선수촌을 예로 들면, 좋은 시설을 만들어놓고 ‘얘들아 모여라’ 이건데 그런 거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성적을 뽑아낼 수 있을까요?”

수업 다 듣는 엘리트 선수, 펠프스·박태환 가능한가?

임다연 경남체육회 소속 수영선수. 제공=임다연 선수
임다연 경남체육회 소속 수영선수. 제공=임다연 선수

실제 한국 학생체육의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수준급 선수들도 수영장 한 레인에 열 명 가까이 들어가 연습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이나 일본에선 선수 당 한 레인이 주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한국에선 언감생심이다.

“저도 서울에서 훈련할 때 한 레인에 10명이 들어가요. 그야말로 레인 전쟁이죠. 팀들도 많으니까요. 제가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간 적 있는데 한 레인에 한 명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 레인에 10명씩 들어가니까... 수영장을 제비뽑기하는 경우도 많죠. 선수들이 만약에 ‘꽝’을 뽑으면 훈련할 다른 수영장을 알아봐야 하는 거에요.”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체육인으로 길러지는 선수들에게 모든 정규수업을 다 듣도록 강제한 안도 문제가 되고 있다. 훈련과정에서 체력소모가 심한 학생선수들에게 일반 학생과 동등한 수준의 수업참여를 요구하는 게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평일에 이뤄지는 정규수업을 다 듣게 하기 위해 모든 대회를 주말에 하도록 한 권고안은 선수들의 휴식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현장을 잘 아는 선배입장에서 이번 권고안이 학생선수들을 옭아맨다고 느껴진 부분이 있어요. 운동하는 선수들이 학교수업을 받는 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대회는 주말에만 해야 한다는 게 권고안 내용에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 친구들은 주말이 없는 거나 다름없어요. 평일에 수업이 있으면 주말에 몰아서 훈련을 해야 하는데 대회까지 주말에 잡히니까요. 휴식권이 우위에 있는지 학습권이 우위에 있는지 논의를 거쳐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혁신위는 체육계 개혁안으로 올해로 48회를 맞은 전국소년체육대회를 폐지하고 체전을 축전으로 바꾼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엘리트 선수뿐 아니라 클럽에서 체육을 하는 학생들도 함께 하는 축전이란 것이다. 종목별 최우수 선수를 가리는 대신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행사로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소년체전 폐지... 비인기종목 직격탄 될까 우려도

오픈워터 바다수영 이미지. / 출저=fnDB
오픈워터 바다수영 이미지. / 출저=fnDB

하지만 소년체전이 36개 종목에서 가장 큰 전국규모 대회인 만큼 폐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소년체전 기록을 바탕으로 지원금을 받아 운동부를 운영하는 다수 일선 학교에서 비인기종목 운동부를 폐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소년체전에 있는 모든 비인기종목 유망주가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건 소년체전이란 대회 덕이 커요. 이 선수들이 동기부여가 돼서 국가대표까지 나아가는 거죠. 이번에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금메달 1개 따는 동안 일본이 19개를 땄어요.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비해 2008년부터 선수촌을 만들어 선수들을 소집하고 12년 간 엘리트 선수를 키워낸 거죠. 일본에서 생활체육 저변을 넓히고자 우리가 시행하려는 정책을 시행해서 성공하지 못한 적이 있는데 우린 왜 다시 이 길로 가려고 하는 건지 궁금해요.”

수영을 포함해 비인기종목이 놓인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기 짝이 없다. 열악한 인적·물적 인프라를 딛고 주목할 성과를 내고 있는 몇몇 선수들의 활약은 그래서 더 놀랍다. 내달 열리는 '2019 광주 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한국 스포츠가 놓인 현실을 그대로 내보인다. 박태환 같은 스타를 배출하고 세계선수권을 유치해 치르는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종목이 적지 않다. 임다연 선수 역시 사상 처음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한 오픈워터 종목 대표로 23일 선수촌에 입성한다.

“오픈워터는 올림픽 정식종목이에요. 오래 전부터요. 한국에선 오픈워터 관련 심판도 없었고 경기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죠. 그런데 이번에 광주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니까 급히 심판을 양성하고 FINA에서 위원들을 모셔와 치르게 됐어요. 수구 같은 경우에도 남자수구만 있었지 여자수구 대표팀은 처음인 걸로 알아요. 한국에서도 이런 종목들이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았으면 해요.”

[이디스 워튼은 '빛을 퍼뜨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촛불이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촛불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매직스피커는 모든 촛불을 응원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그저 응원으로 그치지 않고 촛불이 태운 빛을 세상에 전하는 거울이고자 합니다. 작고 소중한 빛을 그를 필요로하는 이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빛을 지켜내는 파수꾼의 마음을 퍼뜨릴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촛불들이 거센 바람 앞에 위태로운 밤을 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촛불이 홀로 타버리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거울이 될 겁니다. 스피커가 될 겁니다.
부디 우리의 시도가 마법처럼 빛나기를!]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김성호의 매직스피커>에서 더 깊은 인터뷰를 만날 수 있습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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