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경보기도 없이 호우에 수문개방 낮춰…빗물터널 참변 '인재'(종합)

뉴스1

입력 2019.07.31 20:42

수정 2019.07.31 20:42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3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근로자 3명이 고립된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수색 구조작업을 하기위해 크레인을 이용해 사고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2019.7.3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3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근로자 3명이 고립된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수색 구조작업을 하기위해 크레인을 이용해 사고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2019.7.3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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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류석우 기자 = 31일 빗물펌프장 내 지하 배수터널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인부 3명이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자동개폐 수문에서 쏟아진 물에 휩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변을 당한 인부들은 이날 호우가 예보됐음에도 불구하고 자동개폐시스템이 설계보다 낮은 수위에서 열리도록 설정돼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모 외에는 위기시 대응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전무했다. 이번 수몰 사고 역시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양천소방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24분쯤 서울 목동 안양천 인근 빗물저류배수시설 공사장에서 인부 3명이 고립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에 나섰고, 협력업체 소속 인부 구모씨(65)는 오전 10시쯤 발견돼 10시26분쯤에 병원에 이송됐지만 11시2분쯤 사망했다. 또 현대건설 소속 직원 안모씨(29)와 협력업체 소속 미얀마 국적의 M씨(23)는 아직 구조되지 않았다.

사고지점은 서울 양천구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 확충 공사장으로, 이곳은 6월말까지 공사를 마친 뒤 7월부터 시운전을 진행 중이었다. 정식 준공은 내년 1월로 예정돼 있었으며, 시공사는 현대건설, 발주처는 서울시 도시기반본부다.

오전 7시10분쯤 협력업체 소속의 구씨와 M씨가 시설점검을 위해 펌프장 빗물저류시설 터널로 내려갔다. 시설 점검은 매일 아침 한 번씩 일상적으로 진행돼 왔고 통상 30~40분의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오전 7시 예보를 확인했을 때 인천과 강원도·경기도에만 호우주의보가 발효된 상태였고, (인부들이 투입된) 7시10분까지도 현장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7시30분을 기해 서울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예상치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배수터널 초입부분과 중간부분 등에 연결된 수직구 2개가 열리면서 빗물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 수직구는 설계상으로 빗물이 70% 이상 차면 자동으로 열리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시운전 중에는 매일 이 수치에 변화를 주면서 정상 가동을 시험해왔고, 이날은 50%가 되면 열리는 것으로 설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수치는 서울시 관계자와 양천구청 관계자, 현대건설 관계자가 모두 포함된 카톡방에 공유도 됐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인부들은 이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발주처에서도 가동이 제대로 되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매일 조정을 해왔던 것 같다"면서 "아마도 작업을 하러 들어간 분들은 70%가 되면 개폐되는 것으로 알고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빗물펌프장을 관할하는 양천구청 측은 오전 7시38분쯤 현대건설 쪽에 전화를 걸어 수문이 열리는 임계수위에 도달했다고 전달했다. 현대건설 측이 현장에 이를 전파했지만 전화가 온 뒤 2분만에 자동으로 수문이 개방됐다.

양천구청은 애초에 터널 내부에 인부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작업자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현대건설 쪽에서 들은 바가 없었다. 이를 미리 얘기해줬다면 미리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현대건설과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아니라 특별히 어떤 사업을 하는지 등에 대해 공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측이 급하게 수문 제어실로 이동했지만 이에 대한 권한도 없는데다 문도 잠겨있어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이에 따라 오전 7시50분쯤 현대건설 직원 안모씨(29)가 인부들을 구출하기 위해 내부로 진입했다.

이미 수문이 개방된 상태에서 또 다른 인력이 투입된 것에 대해 현대건설은 이전 사례를 고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사흘 전 마지막으로 수문을 개방해 시운전을 할 때 유입수가 도달하는 시간이 49분 정도였기 때문에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유입수가 인부들을 덮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3분이었고, 결국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사고 현장에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안전시설 등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를 당한 인부 3명은 안전모 이외에는 별다른 안전장치없이 현장에 투입됐으며, 터널 내부에 빗물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나 구명조끼, 튜브 등도 마련되지 않았다. 또한 수문이 열렸을 경우 인부들이 인지할 수 있는 경보 등의 장치도 없었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시공하는 현대나 서울시 모두 문제점에 대해서는 차후에 보강하고 수정해서 사고를 막을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