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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담합 인데.." 대법 판결에 공정위 칼 끝 피한 전선업체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4 10:02

수정 2019.08.04 10:37

전선 제조사들 담합 인정됐으나 공정위 "무혐의"
지난 2월 대법 판결로 처분시효 지났기 때문
자진신고 사건은 인지사건으로 본 '관행' 깨져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민간기업의 전력용 케이블 구매 입찰에서 업체들의 담합 행위가 사실상 인정됐음에도 불구, 대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관행에 새로운 해석을 내리면서 업체들이 처분을 피하게 됐다.

4일 법조계와 공정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5월 두산건설이 발주한 전력용 케이블 구매입찰에서 담합한 의혹을 받는 가온전선·넥상스코리아·대원전선·대한전선·LS전선 등 전선 제조사 5곳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담합 인정..처분시효 지나 무혐의”
공정위는 이들이 저가 출혈 경쟁을 피하기 위해 사업을 나눠먹기로 사전에 합의했다고 봤다. 이들은 2008년 8월부터 2009년 9월까지 두산건설이 실시한 14건 사업에서 낙찰사와 들러리사, 투찰가격을 미리 정한 뒤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경쟁을 통해 낙찰자가 결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경쟁 없이 1개 업체가 원하는 금액으로 낙찰 받을 수 있게 해 구매입찰 시장에서의 경쟁을 직접적으로 제한했다”며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전선 제조사들의 위법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처분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보고, 시정조치나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최근 대법원은 ‘자진신고 사건의 경우 조사개시일은 원칙적으로 자진신고일로 봐야 한다’고 판시한 고등법원 판결을 확정했다”며 “이에 따를 경우 이번 사건의 자진신고일은 2013년 10월이므로 자진신고일로부터 5년인 처분시효를 이미 도과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사건절차규칙에 따르면 신고사건의 경우 '신고접수일'을, 인지사건의 경우 △자료제출 요청일 △이해관계자 등 출석요청일 △현장조사일 중 가장 빠른 날을 조사개시일로 보고 처분시효 도과여부를 판단하도록 규정한다.


공정위는 이번 전선 제조사 건처럼 자진신고 사건의 경우 관행적으로 인지사건으로 취급해왔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이번 담합 사건에서도 현장조사에 돌입한 2014년 10월을 조사개시일로 보고, 오는 10월까지 처분시효가 남아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진신고 사건도 신고사건과 마찬가지로 취급해야 한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앞서 서울고법 행정2부(양현주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셰플러코리아의 자동차 부품 담합 사건에서 “신고사건은 자진신고 사건까지 포함해 그 신고접수일을 조사개시일로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자진신고, 신고사건과 마찬가지”
재판부는 “공정거래법은 ‘누구든지’ 법의 규정에 위반되는 사실이 있다고 인정할 때 공정위에 신고할 수 있다고 해 조사개시의 단서가 되는 ‘신고’의 주체를 제한하지 않고 있다”며 “주체가 하는 신고인 자진신고가 ‘신고’에서 제외된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담합 신고서의 서두에 ‘부당한 공동행위 입증에 필요한 정보나 증거를 최초로 제출할 경우 최고 1억원까지 포상금이 지급될 수 있으며, 자진신고자에게는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는 문구도 자진신고 사건과 신고사건이 같다는 근거로 봤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 역시 원심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다.


백광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이번 대법 판결로 공정위가 당분간 자진신고 사건의 처분시효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며 “대법 판결은 공정거래법상 처분시한제도를 둔 취지, 시효 완성에 따른 사업자의 기대이익 보호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규는 엄격하게 따져야 하고 사업자에게 불리하게 확장 해석해선 안된다는 법리를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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