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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글로벌 규범과 로컬 규범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15 17:16

수정 2019.08.15 17:16

[여의나루]글로벌 규범과 로컬 규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우리의 일부 제조업이 위기에 처하면서 최근 제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 환경 등 일부 규제의 일시 완화를 추진하는 한편 제조업 지원예산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분배 문제가 부각된 상황에서 잊혀가던 제조업의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어 다행이다. 다만 예산 확보에 치우친 지원은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규제개혁을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진출이 불가피하다.
국내 시장만 바라본다면 수요가 한정적이고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없어 성장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시장에 들어오는 경우 경쟁력을 쉽게 잃어버리고 국내시장마저 내줄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가구부문의 경우 조달청의 중소기업 우선구매 지원으로 우리 중소기업들은 주로 국내 공공시장에 안주해온 상황에서 이케아가 들어오자 경쟁력을 잃고 우리 시장조차 점차 이케아에 내주고 있다. 창업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할 이유다.

성공적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규범들이 글로벌 규범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부터 글로벌 규범에 적응한 기업들은 학습효과로 인해 해외진출이 용이하지만 반대의 경우 학습효과를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이중규제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품 설계부터 제조 단계에 이르기까지 시간, 노력 그리고 비용이 이중으로 늘어나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글로벌 규범은 무엇인가. 선진 각국의 규범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품목별 세계의 생산과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고.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야 하는 나라의 규정을 글로벌 규범으로 정의하면 답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규범 학습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진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미국처럼 연방제로 인해 지방별 규정이 서로 다른 경우다. 이 경우 지방정부들의 평균적 규범을 글로벌 규범으로 정의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우리 환경부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규범 도입에 적극적이다. 가장 친환경적 규범을 많이 갖고 있어서일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지형 특성으로 인해 공해물질 확산이 어렵고, 강한 태양광과 공해물질이 반응한 광화학스모그 발생이 잦아 1960년대부터 연방정부보다 강력한 대기환경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편 캘리포니아엔 전기차 전문기업인 테슬러의 공장만 있고 내연기관 자동차 공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평균 주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의 대기 질은 미국 내 다른 어떤 도시보다 나쁘다. 2017년 미국폐학회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내 대기오염이 심한 상위 10개 지역 중 8개가 캘리포니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캘리포니아의 규범은 글로벌 규범이 아니라 로컬 규범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의 규범을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경우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규범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된다. 독일이나 일본 기업들은 글로벌 규범하에 학습효과를 누리는 한편 이중의 규범 대응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가장 강력하다는 이유만으로 글로벌 규범이 아니라 로컬 규범을 채용해 간다면 우리 기업들의 설 땅은 줄어들 것이다.
앞서 지적한 글로벌 규범의 학습효과를 누릴 수 없을 것이고, 경쟁력은 약화돼 갈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 당국자들의 재인식과 관심을 기대해본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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