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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톡] 한·일 갈등에 전리품 챙기는 중국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23 17:02

수정 2019.08.23 17:02

[차이나 톡] 한·일 갈등에 전리품 챙기는 중국
미국과 패권싸움으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이 모처럼 느긋한 표정이다. 한·일 갈등이 고조되면서 경제와 안보 면에서 예상치 못한 실리를 챙기게 됐다.

중국의 대외교 정책은 한마디로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자국의 세력 확장을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자금을 지원해준 국가들이 빚더미에 앉으면서 서방 국가들로부터 부채외교를 한다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국가에는 거친 보복행위를 일삼아 자유무역주의 수호자를 외치는 중국이 이율배반적 행위를 한다고 비난을 받았다.


중국의 패권국 부상을 우려하는 미국이 무차별 보복 카드를 남발하면서 중국의 고심은 갈수록 크다. 세계 패권을 거머쥐어보겠다며 중국몽을 키워가는 중국이 경제·외교 확장 과정에선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한·일 갈등이 중국에 예상치 못한 보물이 됐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규제 보복을 가하면서 양국 관계가 소원해진 게 중국에 뜻밖의 전리품을 안겨줬다. 일본과 한국의 첨단산업 기업들이 중국에서 대체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고립정책으로 첨단장비 수혈과 투자를 일본과 한국에서 찾고자 고군분투하던 중국으로선 쾌재를 부를 기회를 맞은 셈이다. 지지부진하던 반도체굴기에도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한·일 갈등의 중재자 역할로 미국 대신 중국이 나서게 된 점도 뜻밖이다. 미국의 중재 역할이 느슨한 공백을 틈타 중국이 그 역할을 대행하는 형국이다. 실제로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한·중·일 3국 외무장관회의에서 중국의 중재자 역할이 부각됐다. 역내 평화안정을 위해 양국 갈등이 대화로 풀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산하며 공감대를 얻었다. 중국이 절치부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 한·일 갈등으로 난관에 봉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중국이 새로운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는 점과 향후 RCEP과 한·중·일 FTA 타결 과정에 중국의 명분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중국은 경제·외교 양면에서 막대한 실리를 챙기게 됐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조치로 한국이 꺼내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중단조치는 중국에 기대 이상의 수확이 될 전망이다. 한국이 지소미아 연장을 중지하면서 미국 주도의 한·미·일 3각 안보공조도 흔들릴 조짐이다. 중국이 안보 확장에 나설 절호의 기회까지 맞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한·일 양국 방문과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 등 중국에 유리한 외교일정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 한·일 갈등이 중국으로선 선심성 외교를 펼칠 호재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굳이 돈보따리를 들고 환심을 얻거나 경제보복으로 상대국을 굴복시켜 중국 이미지를 떨어뜨릴 필요도 없다. 오히려 우격다짐하는 국가들이 위기 국면을 극복할 방편으로 중국과 관계개선에 나서면서 중국의 주가가 높아질 따름이다.
지난 21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이후 기념촬영 과정에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손을 확 잡아끄는 모습을 보이며 양국을 가깝게 연결시키려는 제스처를 취해 주목받았다.

동맹국인 한국의 급성장을 오히려 우려하는 일본의 소아병적 시각과 보복을 가하면 그저 포기하고 따라올 것이라는 오만한 외교가 한·일 관계를 더욱 수렁에 빠지게 한다.
거친 보복과 압박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던 중국의 외교적 노력이 일본의 오만한 외교 덕분에 빛을 보게 됐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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