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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일본의 자금회수’ 트라우마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28 17:28

수정 2019.08.28 17:28

[윤중로]‘일본의 자금회수’ 트라우마
일본이 28일부터 우리나라를 수출우대국인 '백색국가'군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시행에 들어갔다. 정부는 국내 수입이 적은 품목을 빼면 159개 품목이 직접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수출무역관리령이 일종의 '고무줄 규제'여서 최악의 경우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이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볼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반도체 관련 핵심소재 3개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경제갈등은 우리나라의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등을 거치면서 악화일로다.

사실 일본이 백색국가 배제를 시행한 이 시점에서 우려하는 것은 금융으로 확전이다. 일본이 기업을 포함해서 한국 투자자금을 회수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일본발 금융위기' 가능성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일본계 자금의 특이 동향은 없고, 외환보유액과 순대외채권액 등을 감안했을 때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언급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기억은 우려를 낳는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일본계 자금은 소위 '배신의 아이콘'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최다 채권자로서 일본은 자금을 회수하면서 국제자본 유출을 촉발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가 오기 전인 그해 여름 일본 은행들은 자금을 회수했다. 일본자금 움직임을 좇아 유럽 은행들이 자금을 빼 갔다.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일본은 자금회수 전력이 있다.

현재 국내 외환·국제금융 상황이 1997년, 2008년과는 많이 달라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정부와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 2·4분기 말 우리나라 순대외금융자산은 전분기 말 대비 260억달러 증가한 4623억달러로 사상 최대다. 캐나다, 스위스 등 준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어 금융안전망도 대폭 강화됐다. 여기에다 국내에 들어온 일본계 자금(은행 부분 한정) 비중은 2.5%로 과거(1997년 27%)에 비해 크게 낮다.

그렇다고 불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 수출규제의 시작은 반도체 소재였다. 반도체산업은 실물이지만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반도체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게 현재의 한국 산업·금융구조다. 반도체 등 주력산업 수출로 경상수지 흑자를 늘려 외환보유액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외화유동성 위기를 막을 버팀목으로 활용한다. 문제는 반도체 등 수출이 역성장하면서 올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 폭이 2012년 상반기 이후 7년 만에 가장 적다는 것이다. 전년동기 대비 24.6%나 줄었다. 향후 수출전망 또한 어둡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금융과 실물을 연결하는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겨냥했다. 현재 상황이 관리되면 일본발 금융위기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다. 대외개방 정도 또한 높다.
수출 주력산업이 휘청이면 경상수지를 기반으로 한 대외균형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상황 악화 땐 '서든스톱'으로 불리는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출은 순식간에 올 수 있다.
안심을 장담하기엔 상황이 여전히 위중하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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