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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출신 로스쿨 교수가 진단한 '골든레이호' 사고 원인은?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14 07:50

수정 2019.09.14 09:56

선장 출신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자동차운반선, 오뚝이처럼 다시 중심을 회복하는 '복원성' 부족'
'얕은 수심 등 복원성 갖추지 못한 특별한 상황도 있었을 것'

8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브런즈웍항 인근 해상에서 현대글로비스 소속 대형 자동차 운반선 '골든레이호'가 전도된 가운데 인근 해변의 주민들이 한가로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골든레이호는 길이 199.95m, 넓이 25.4m로 2017년 현대중공업 미포 조선소에서 건조됐다. / 사진=뉴시스
8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브런즈웍항 인근 해상에서 현대글로비스 소속 대형 자동차 운반선 '골든레이호'가 전도된 가운데 인근 해변의 주민들이 한가로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골든레이호는 길이 199.95m, 넓이 25.4m로 2017년 현대중공업 미포 조선소에서 건조됐다. /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동부해안 브리즈웍에서 출항하다 선체가 기울어지는 사고를 당한 현대글로비스 선단 소속 '골든레이(Golden Ray)호'가 선박이 기울었을 때 다시 돌아오는 성질을 뜻하는 '복원성'이 부족해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는 지난 11일 업로드한 유튜브 영상에서 "TV영상을 보니까 두 선박이 서로 지나가는 중에 골든레이호가 오른쪽으로 변침하는 장면이 나왔고 그 다음에 배가 기울어지게 됐다"면서 "그렇다면 이 배의 복원성이 나쁜 상태가 아니었나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1일 업로드한 영상 '골든레이호 사고' 선박 모형을 이용해 자동차운반선의 특성과 사고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출처=유튜브 캡처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1일 업로드한 영상 '골든레이호 사고' 선박 모형을 이용해 자동차운반선의 특성과 사고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출처=유튜브 캡처

그는 "(선박이) 대각도 변침을 한다고 해도 복원성이 좋으면 오뚝이처럼 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원성은 선박이 변침(운행 중 진행 방향을 바꾸는 것)하면서 한쪽으로 기울거나 바람·파도 등 날씨 등으로 인해 좌우로 흔들릴 경우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성질을 말한다.

선박이 기울어진 부분에서 떠오르는 힘(부력)이 누르는 힘(중력)보다 크도록 설계해 다시 중심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기울어진 각도가 크면 클수록 중심으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데 복원성이 좋다는 것은 큰 각도로 넘어간다고 해도 곧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복원성이 나쁘다는 것은 작은 각도로 기울었을 때도 선박이 중심을 찾지 못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인데 골든레이호도 이같은 복원성 부족 때문에 전도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자동차운반선, 복원성 부족한 것이 특징

자동차운반선의 구조. / 제공=한국해양수산연수원
자동차운반선의 구조. / 제공=한국해양수산연수원

그는 자동차운반선의 특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김 교수는 "사고 난 선박이 자동차운반선이라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할 것 같다"며 "(선박) 위쪽에 화물을 많이 싣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적인 화물선은 갑판(배의 상판) 아래에만 화물을 싣는 반면 원목선, 컨테이너선, 자동차운반선 등은 배 갑판 위에도 화물을 싣기 때문에 안정성이 떨어진다.

그는 “컨테이너 선박 같은 경우는 이(갑판) 위에 컨테이너가, 원목선은 원목이 실린다”면서 “자동차운반선은 여기(갑판 위)에 차폐를 해서 자동차를 싣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운반선은 화물(자동차)을 보호하기 위해 막아두어서 모든 화물이 갑판 아래에 실린 것처럼 보이지만 원목선·컨테이너선과 같이 갑판 위에도 화물을 싣는 셈이다.

■'얕은 수심 등 복원성 갖추지 못한 사정 있을수도'

지난 2016년 12월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운반선 '글로비스 코로나호(Glovis Corona)'가 독일 인근 북해에서 높은 파고로 인해 기울어져있다. 이처럼 자동차운반선은 복원성이 부족해 중심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 사진=외신
지난 2016년 12월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운반선 '글로비스 코로나호(Glovis Corona)'가 독일 인근 북해에서 높은 파고로 인해 기울어져있다. 이처럼 자동차운반선은 복원성이 부족해 중심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 사진=외신

김 교수는 골든레이호가 평소보다 복원성을 더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선박 아래에 있던 자동차를 풀고 나면(하역하면) 그만큼 가벼워지니까 이 밑에 다시 발라스트을 채워야한다”며 “얕은 수심 등으로 인해 채우지 못한 사정이 있었다면 GM이 작아진다. (GM이 작다면) 선박을 조선(조종)할 때도 주의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사고가 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견해를 밝혔다.

화물선이 화물을 하역하고 나면 배가 가벼워져 물에 덜 잠기게 되는데 이때 무게 중심이 높아져 안정성이 떨어지고 선박의 프로펠러가 수면 위로 노출돼 운항이 불가능해지는 등의 이유로 선박 내 지정된 탱크에 물을 집어넣어 선박을 가라앉힌다. 이를 발라스트(선박평형수)라고 한다.

GM은 선박의 무게중심(center of Gravity, G)과 경심(Metacenter, M)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무게중심과 경심은 선박이 기울었을 때 각각 선박을 누르는 힘(중력)과 떠오르게 하는 힘(부력)이 작용하는 지점이다.

GM이 클수록 복원성이 좋고 작을수록 복원성이 나쁘다. 지렛대의 원리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무게중심으로부터 경심이 먼 경우에 같은 부력으로 선박을 들어올리기가 쉬워 선박이 기울어져도 금세 중심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선박이 기울어졌을 때 선박에 작용하는 힘의 원리를 설명한 그림. '(a)안정 평형 상태'에서는 선박이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데, G로부터 M까지의 거리가 멀 수록 중심으로 회복되는 힘이 더 크다. 반면 '(c)불안정 평형 상태'에서는 GM값이 마이너스(-)로 되려 선박이 더 기울어지게 된다. / 출처=해사고등학교 항해 교과서
선박이 기울어졌을 때 선박에 작용하는 힘의 원리를 설명한 그림. '(a)안정 평형 상태'에서는 선박이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데, G로부터 M까지의 거리가 멀 수록 중심으로 회복되는 힘이 더 크다. 반면 '(c)불안정 평형 상태'에서는 GM값이 마이너스(-)로 되려 선박이 더 기울어지게 된다. / 출처=해사고등학교 항해 교과서

자동차운반선 자체가 복원성이 나쁜데다가 골든레이호가 평소에 갖출 수 있는 복원성보다 더 낮은 복원성을 갖게 만든 사정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다만 그는 “항해 전문가인 도선사가 타고 있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단시 추측일 뿐”이라며 “배가 침몰한 것이 아니고 그 자리에 남아있기 때문에 사고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자동차운반선, 컨테이너선박, 원목선의 경우 복원성이 나쁜 대표적인 선박”이라며 “출항하기 전에 반드시 복원성이 얼마인지 초시계로 재어서 확인하고 복원성을 더 갖춘 다음 출항해야한다. 복원성이 나쁜 상태로 출항했다면 굉장히 조심스럽게 행해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보통 선박이 출항하기 전, 자동계산 프로그램에 선박의 제원과 화물의 무게·위치 등을 기입하면 자동으로 복원성을 계산해주는데 선박을 인위적으로 좌우로 흔들어 중심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복원성을 알아보는 방법 등을 통해 안정성을 정확히 측정해달라는 주문이다.

김인현 교수는 상선 선장 출신 해상법전문가로서 지난해 7월부터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골든레이호는 미국 조지아 주 브런즈윅 항에서 자동차 약 4000대를 싣고 출항하던 중 항만 입구에서 선체가 기울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미 해안경비대는 한국 국적 10명 등 선원 23명을 전원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골든레이호는 길이 199.95m, 넓이 25.4m의 대형 자동차운반선으로 2017년 현대중공업 미포 조선소에서 건조됐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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