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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코끼리바위 아닙니다..여기는 황금산 몽돌해변[Weekend 레저]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27 03:59

수정 2019.09.27 03:59

그림같은 해안선, 세계적 철새도래지
서해의 보물 '서산'
간조때 뭍과 연결되는 웅도 갯벌
바지락·쭈꾸미·미역 등 황금어장
코끼리바위로 유명한 황금산
숲길·해안 어우러진'서산7경'
노르망디 코끼리바위 아닙니다..여기는 황금산 몽돌해변[Weekend 레저]
웅도 바지락캐기 체험
웅도 바지락캐기 체험
해미읍성의 호야나무.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고문을 당했던 나무이다.
해미읍성의 호야나무.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고문을 당했던 나무이다.
그림처럼 펼쳐진 해안선과 전국 최고의 청정함을 자랑하는 가로림만의 갯벌은 충남 서산의 매력이다. 매년 320여종 하루 최대 50여만 마리의 철새가 모여드는 천수만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다. 금북정맥이 서해를 향해 내달리다 우뚝 솟은 가야산과 전국 100대 명산으로 불리는 팔봉산 뿐 아니라 황금산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서산은 내포문화권의 중심지이자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 선생의 출생지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고장이기도 하다. 호서지방의 심장부로 전국 최대의 순교성지인 해미읍성은 서산의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품고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은 형태와 같다고 하여 웅도라는 이름이 붙은 섬이 있다. 웅도는 당산의 제단 주위에는 수백 그루의 아름드리 노송들이 있는데 이를 먼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섬의 배꼽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에 따라 주민들이 이 섬을 배꼽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웅도는 뭍에선 불과 7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육안으로 봐도 가깝다. 가로림만 내에 있는 여러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육지와는 연륙되어 간조 때에는 도보통행이 가능하고, 만조 때에는 선박을 이용한다. 가로림만은 물이 빠지고 나면 갯벌이 드러난다. 다양한 유기물과 갖가지 바다 생물이 살아 숨 쉬는 갯벌은 자연 학습장이자 생태계의 보고이다. 가로림만은 96.03㎢의 넓은 갯벌을 간직한 곳으로 바지락, 굴, 홍합 등 어패류와 낙지, 쭈꾸미, 미역 등을 길러내는 서해안 최대의 황금 어장이다.

웅도 연근해에서는 낙지·우럭·남방붕장어·놀래기·넙치·도다리·꽃게 등이 잡히며, 돌김·굴·바지락 등이 채취된다. 송현철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장은 "웅도는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에서 주관하는 '2019 강소형 잠재관광지 발굴·육성사업'으로 선정됐다.

몽돌해변과 코끼리바위가 유명한 황금산으로 향했다. 황금산은 서산9경 중 제7경으로, 해송과 야생화가 어우러진 숲길과 몽돌로 이루어진 해안이 절경을 이룬다. 해발 156m의 낮은 산이지만 산을 넘으면 코끼리바위가 있는 아름다운 해안 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평범한 금을 뜻했던 '황금'에 비해 고귀한 금으로 여겼던 '항금'의 명칭을 딴 '항금산(亢金山)'이었다고 전해진다. 서쪽은 바위절벽으로 서해와 접해있고 금을 캤다고 전해지는 2개의 동굴이 남아있다.

예전에는 섬처럼 고립된 지역이었지만 1988년 화학공장이 들어서면서 육지와 완전히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황금산 입구는 아라메길 3코스의 출발지이기도 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30분쯤 걸었을까. 두 개의 갈림길이 나왔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과 코끼리바위와 굴금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코끼리바위로 내려가는 길을 걸어 내려가다 보니 나무 사이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해안가에는 두 발이 닿는 모든 곳이 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몽돌이었다. 해변을 따라 올라가면 멋진 주상절리가 펼쳐진다. 바다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크기는 더 작아지고 동글동글 귀여운 몽돌이 되었다.

황금산을 둘러본 뒤 현존하고 있는 성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평성으로 유명한 해미읍성을 찾았다. 바다가 아름답다는 의미의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조선시대부터 사용됐다.
조선 태종이 1416년 서산 도비산에서 수렵대회를 하다가 해미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주변지역을 둘러보게 됐는데 당시 해안지방에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판단해 덕산에 있던 충청병영을 옮기기 위한 대상지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해미읍성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회화나무가 보인다.
서산지역에서 호야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를 철사줄로 매달아 고문했던 나무로 아직도 묵묵히 그 상처를 안은 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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