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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성적, 학력, 스펙쌓기로 특권 계급화한 9.9% 해부

뉴시스

입력 2019.10.02 15:54

수정 2019.10.28 18:01

이음 '부당세습'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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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철훈 기자 = "미국의 9.9퍼센트, 비겁한 침묵을 깨다. 한국에서는 도대체 누가 할 것인가?"
이 도발적인 카피를 내걸고 출간된 책의 부제는 '불평등에 공모한 나를 고발한다'이다. 저자는 자신이 속한 상위 9.9퍼센트 그룹을 겨냥해 “특권 사회의 공모자”라고 가차 없이 비판한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간, 숱한 분석과 우려의 말들이 무색할 만큼 점점 심각해지기만 한 불평등 구조는 피도 눈물도 없는 최상위 0.1퍼센트 혼자 만들어낸 게 아니다. 중상위 엘리트 계층인 9.9퍼센트는 불평등 구조 속에서 “90퍼센트로부터 자원을 뽑아내어 0.1퍼센트로 옮기는 깔때기 형태 기계를 작동시키는 직원 노릇”으로 상당량의 전리품을 챙겼다. 그 결과 사회가 대중적 분노에 휩싸였다.
그런데도 9.9퍼센트는 “중산층인 척 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99퍼센트의 편에 은근슬쩍 서서는 입바른 소리만 해댔다.

2016년 기준으로, 약 120만 달러(약 13억 원)에서 1천만 달러(약 11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변호사, 의사, 치과의사, 투자은행가, 애매모호한 직함을 가진 MBA 출신, 여러 전문직 종사자"인 9.9퍼센트를 일컬어 저자는 "새로운 귀족”이라고 명백히 선언한다.

통상 능력자 계층(meritocracy)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자신은 능력(merit)이 있어 성공했다고 당당하게 말하곤 하지만 그 능력인 시험 성적, 학력, 경쟁력 있는 스펙과 커리어, 시스템에 대한 영향력 등은 사실상 특권에 기반한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를 두 달 동안 흔들어대고 있는 조국 사태의 원인과도 맞물린다. 이 계층은 그 능력을 대물림하는 정교한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사실상의 신분 혹은 계급을 굳히고 있다.

저자의 주장은 강하고 직선적이고 노골적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사회의 능력주의 신화는 이 계층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편리한 구실에 불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야말로 미국 경제의 목을 죄고,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과정의 주요 공범"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불평등의 심각성과 해악을 지적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합법화된 특권을 누리고 있는 바로 그 당사자가, 유체이탈 화법을 쓰지 않고, 자신을 비판하며 책임을 통감하는 목소리는 낯설다.

"우리는 이를테면 90퍼센트로부터 자원을 뽑아내어 0.1퍼센트로 옮기는 깔때기 형태의 기계를 작동시키는 직원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공정에서 우리 몫의 전리품을 만족할 만큼 챙겼다.
분노에 차 있고, 정치적으로 조종당하기 쉬운 사람들이 생겨나는 데 우리가 기여했는데도, 우쭐대고 멸시하는 태도로 방관했다. 이제 우리는 그 결과를 받아들일 채비를 해야 한다"(본문에서)

날카롭고도 정직한 1인칭의 고발 혹은 고백은 한국사회를 향해 직격으로 묻는다.
도대체 누가 이 불평등의 폭주를 멈출 것이냐고.

감수와 해설을 맡은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해제에서 "9.9퍼센트라는 숫자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미국 외 어떤 국가에서는 5퍼센트거나 10퍼센트일 수도 있는 '신흥 특권 계급'의 존재에 주목해야 한다"며 "특권의 정당화 및 세습 매커니즘과,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대중적 분노, 전문직 엘리트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이 긴밀히 연결되어 현 사회 체제의 극심한 불안정을 낳고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스퍼드 철학과 출신의 미국의 정치철학자 매튜 스튜어트 지음. 이승연 옮김. 145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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