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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선 야구대회→조선올림픽→전국체전' 100년의 발자취

뉴시스

입력 2019.10.04 11:44

수정 2019.10.04 11:44

일제탄압과 전쟁 속에서 일어선 한국체육의 산역사 1938년 조선체육회 '해산'…1950년 한국전쟁으로 대회 '무산' 1952년~1956년 서울에서만 개최…1957년 첫 지방개최
【서울=뉴시스】제1회 전조선야구대회 (사진 = 대한체육회 제공)
【서울=뉴시스】제1회 전조선야구대회 (사진 = 대한체육회 제공)
【서울=뉴시스】문성대 기자 = 제100회 전국체육대회가 4일 막을 올린다.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기원으로 시작된 한민족 축제가 100회째를 맞게 됐다.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교육청·서울특별시체육회에서 주관하는 제100회 전국체육대회는 4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0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 등 서울시 일원 72개 경기장에서 개최된다.

이번 대회에는 47개 경기 종목(정식 45·시범 2)에서 17개 시·도선수단 총 2만4988명(임원 6400명·선수 1만8588명)이 대회에 참가한다. 또한 18개 재외한인체육단체 선수단 1864명이 고국을 방문해 9개 종목에 참가한다.

제100회를 맞이해 33년 만에 서울에서 전국체전을 개최한다.


한국 체육은 10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눈부시게 성장했다.

전국체전의 기원은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창설된 후의 첫 행사로 그해 11월에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개최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다.

조선체육회 출발 초기에는 현재와 같은 종합대회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단일 종목별 경기대회를 차례로 개최해 나가면서 체육활동의 폭을 넓혀나갔다.

종합경기대회가 등장한 것은 1925년이었다. 그해 성동원두에 경성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이 세워지고, 이를 기념해 이른바 조선신관경기대회가 마련됐다.

그러나 이 대회를 우리 민족의 체육대회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일본인에 의해 준비되고 운영됐으며, 일본 선수들도 다수 참가했기 때문이다.

한민족 종합체육대회의 효시는 1934년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전조선종합경기대회다.

당시 경기종목은 축구, 야구, 정구, 농구, 육상 등 5개 종목이었고, 이 대회가 기록상 제15회 전조선종합경기대회가 된다.

첫 번째 종합경기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 이듬해에는 유도, 씨름, 검도, 역도가 추가되고 1936년에는 빙상, 권투, 탁구가, 1937년에는 배구가 추가되는 등 대회 규모가 점차 확대됐다.

그러나 1938년 조선체육회가 강제 해산당하고 민족 체육이 억압당함으로써 전조선경기대회는 제18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서울=뉴시스】1945년 자유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사진= 대한체육회 제공)
【서울=뉴시스】1945년 자유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사진= 대한체육회 제공)
1945년 광복 이후 민족 스포츠 대회는 부활했다. 그해 11월 조선체육대회가 열렸고, 12월 초 자유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인 제26회 전국체육대회 개최됐다.

이는 1945년 해방 후 남북이 마지막으로 함께한 전국체전이었다. 당시 경기종목은 육상, 축구, 야구, 배구, 정구, 럭비, 풋볼, 탁구, 자전거, 승마, 농구 등 10개 종목이었으며 이듬해 1월에는 빙상대회도 부활했다. 이 대회가 현재의 빙상 및 동계스키대회로 발전됐다.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대회 이외에 3.1절 경축대회가 잇따라 열렸으며, 1947년 6월 대한올림픽위원회의 발족을 앞두고 벌어진 제27회 대회는 조선올림픽대회로 불렸다.

이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제29회 대회가 열렸다. 이때부터 조선종합 경기대회 또는 조선올림픽대회 등으로 불리던 명칭을 '전국체육대회'로 명명하며 자유 참가제에서 시·도 대항제로 바뀌게 됐다.

특히, 1948년 건국 후 최초로 런던올림픽대회 참가를 앞두고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여러 부문에 걸쳐 우수한 기록이 작성되고 많은 유망 선수들이 배출됐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대회는 열리지 못했다. 이듬해인 1951년 전쟁 속에서도 제32회 광주 대회를 치르기도 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제100회 전국체전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모의 개회식이 펼쳐지고 있다. 2019.10.03. (사진=서울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제100회 전국체전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모의 개회식이 펼쳐지고 있다. 2019.10.03. (사진=서울시 제공) photo@newsis.com
1953년 휴전이 되고 사회가 차츰 안정됨에 따라 체육대회 역시 질적으로 충실해지고 양적으로도 대형화됐다.

1952년 제33회 대회부터 제37회 대회까지 서울에서만 개최됐던 전국체전을 중앙과 지방의 균등한 체육발전을 이룩한다는 취지 아래 제38회(1957년) 부산, 제41회(1960년) 대전, 제43회(1962년) 대구, 제45회(1964년) 인천, 제46회(1965년) 광주 등 지방도시에서 열어 스포츠의 전국적인 보급 발전을 도모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로 전국체전은 더욱 발전했고, 한국 체육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에서 수 많은 명승부를 연출했다.

한편, 전국체전 성화는 1955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36회 때부터 이상백 박사의 제의로 단군성조에 관한 전설과 유적이 많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채화한 뒤 대회 주경기장까지 봉송하는 제도가 마련됐다.


제100회 대회 성화는 지난달 22일 강화도 마니산에서 채화돼 전국 17개 시·도 등 총 2019㎞를 달려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 점화된다.

sdmun@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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