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1) 홍수영 기자,오현지 기자 = "자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위로 비가 막 쏟아지는거야. 무슨 일인가 싶었지. 집 천장이 다 뜯겨서는 우박같은 비가 막 쏟아지는데. 어휴."
지난 2일 새벽을 떠올리던 강모 할머니(65)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 할머니는 말 그래도 악몽이었던 그날밤을 되새기려니 심장이 떨린다며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제18호 태풍 '미탁(MITAG)'이 제주로 향해 북상하던 지난 2일 오전 3시쯤 제주도 서귀포 성산읍 신풍리에 있는 강 할머니의 집에 돌풍이 몰아쳤다. 순식간에 집 지붕과 천장이 뜯겨 나갔다.
이날 밤 태풍 미탁이 온다는 소식에 집 구석구석 항아리 등이 날아가지 않게 단속하고 잠에 들었던 강 할머니는 이불자리 위로 쏟아지는 비에 눈을 떴다.
"와다다와다다, 돌맹이 같은 비가 막 쏟아지고.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아들도 괜찮냐며 달려나오는데, 아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 범벅인거야. 얼마나 놀랐는지."
강 할머니는 부서진 집의 파편에 맞아 머리를 다친 아들과 함께 안방으로 피신했지만 이미 그곳의 천장도 돌풍에 뜯겨 날아간 후였다. 살려달라며 뛰어간 앞집도 정전상태라 겨우 119구조대를 불렀다.
강 할머니는 집을 탈출하며 깨진 유리창 파편 등이 옷 안으로 파고 들어와 눕지도 못한채 제주시에 있는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왼쪽 허벅지 다리 힘줄이 끊어지는 등 부상을 입었지만 부서진 집 걱정에 쉴새가 없었다. 찢어진 곳을 몇바늘 꿰맨 후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4일 찾은 강 할머니의 집은 지붕 없이 하늘 아래 긴박했던 그날 밤의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돌담에는 젖은 이불과 옷가지들이 널려있고 혹시나 쓸만할 게 있을까 모아놓은 짐들이 한쪽에 쌓여있었다. 버리다 남은 책 일부는 마당에서 말리고 있었다.
그러나 태풍과 함께 날아간 세간살이를 예전처럼 돌려놓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이틀전 강 할머니가 덮던 이불과 베개도 어디론가 날아가버렸고 유리창은 물론 벽지와 문들도 비바람에 모두 뜯겨 방문 한쪽만 겨우 달려있었다. 집안 바닥에는 자잘하게 부서진 나무조각과 유리조각들이 나뒹굴었다.
3년전 세상을 떠난 남편이 손수 정성껏 지어올려 수십년 살아온 집이지만 강 할머니는 이제 집을 부숴야 하나 고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강 할머니는 "사람들이 목숨이라도 건져 다행이라고 하더라"고 말하면서도 부서진 집을 보며 한숨을 깊게 쉬었다. 이웃들도 잠잘 곳을 제공해주겠다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당장 살아갈 걱정에 눈앞이 캄캄한 건 어쩔 수 없는 탓이었다.
"비에 잠긴 감귤밭도 걱정"이라는 강 할머니는 "당장 입을 수 있는 옷이라도 있으면 입고 밭에 나가야지"라며 절뚝거리며 창고로 향했다.
한편 제18호 태풍 미탁(MITAG)은 지난 9월28일 대만 타이베이 남남동쪽 부근 해상에서 발생했으며 지난 2일 오후 제주에 최근접하면서 이재민 30명, 200곳 침수·파손 등의 피해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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