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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변화시킨 너]①"두 눈을 똑바로 떴다…'장애투성이'였다"

뉴스1

입력 2019.10.07 08:00

수정 2019.10.07 10:32

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이사·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이 광화문 한 건물 세미나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9.21/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이사·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이 광화문 한 건물 세미나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9.21/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홍윤희 이사가 딸 지민이(맨 앞줄 오른쪽), 자원봉사자들과 기념 사진 자세를 하고 있다.(홍 이사 제공)© 뉴스1
홍윤희 이사가 딸 지민이(맨 앞줄 오른쪽), 자원봉사자들과 기념 사진 자세를 하고 있다.(홍 이사 제공)© 뉴스1


협동조합 '무의'가 지하철 역 내 '장애인 불편 요소'를 발견해 표시한 사진(무의 제공)© 뉴스1
협동조합 '무의'가 지하철 역 내 '장애인 불편 요소'를 발견해 표시한 사진(무의 제공)© 뉴스1


[편집자주]'날 변화시킨 너.' 그들은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란 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이거나 가르치는 선생님, 신체적 결함을 보완해 주는 옷을 제작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들은 장애인 곁을 지키면서 더 배웠다고, 더 성장했다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됐다고 입을 모읍니다. <뉴스1>은 그들의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그리하여 장애인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존재임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지민이는 태어나자마자 아팠다. 자기공명 영상장치(MRI) 검사를 했더니 척추 근처에 무언가 튀어나온 게 보였다. 종양이었다. 지민이는 소아암의 일종인 '신경모세포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1년 4개월간 총 14차례 항암 치료를 받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지민이는 후유증으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됐다.

'지민이 엄마'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 내 일이 아니야." 견딜 수 없으니 자꾸만 외면하게 됐다. 살아가려면, 헤쳐나가려면 받아들여야 했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봤다. 모순투성이였다.

'화이트컬러'(연봉이 비교적 높은 사무직 등을 의미) 여성에서 '사회공헌 활동가'로 변신한 여성의 사연이다. 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커뮤니케이션 부문 이사(46) 얘기다. 올해 13살 여학생인 지민이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 홍윤희 이사는 딸 지민이에게 당당할 것을 요구한다.

"지민아, 장애를 가진 것은 네가 아니야. 장애를 가진 것은 너를 그렇게 바라보는 세상인데, 네가 기죽을 필요 없지."

◇"종이로 살을 베이는 느낌 아세요?"

지난달 21일 오전 9시 광화문 한 건물 세미나실에서 홍 이사와 마주 앉았다. '가장 하고 싶은 얘기'를 물었다. 그는 "종이로 살을 베이는 느낌을 아느냐"고 되물은 뒤 대답했다.

"지민이와 지하철을 타면요, 굳이 하시지 않아도 될 말을 하시는 분이 꼭 있으세요. '얼굴은 참 예쁜데 애가 어쩌다가 다리를 다쳐서…'라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씀하시죠. 그때 저의 기분이요? 마치 종이로 살을 베이는 아픔을 느낍니다. 당당하게 지내다가도 그런 말엔 신음할 수밖에 없어요."

홍 이사는 지민이를 낳은 후 점점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지난 2011년 그의 가족은 강동구 상일동역 인근으로 이사했다. 당시만 해도 상일동역에 엘리베이터 한 대 설치되지 않았다. 장애인들만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두 다리로 이동하기 어려운 교통 약자라면 이곳에서 모두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그렇지 않으면 듣지 않으니까"

하루는 3개 구간 환승역 고속터미널 역을 통해 출근하는 길이었다. 역 안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난 상태였다. 홍 이사 머릿속에 '만일 지민이와 함께 가는 길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휠체어 탄 지민이는 계단을 오르기조차 힘들었을 거예요. 역무실에 전화했더니 '역 안 위치마다 담당하는 호선이 다르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시설 개선 담당을 '일원화'하지 않아 장애인은 민원 과정에서도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어요."

홍 이사는 이날 있었던 일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어느 기자가 그 글을 읽고 기사화하자 거센 논란이 일었다. 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즉시 해명자료를 냈다. 그때 홍 이사는 느꼈다고 한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세상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2015년 말 한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후원 활동 '스토리 펀딩'을 했어요.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는 제목의 스토리 펀딩이었죠. 후원금은 '어디든 쉽게 가고픈' 지은이의 여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제작하는 데 쓰였어요. 지민이 같은 교통 약자가 겪는 불편함과 차별적인 환경을 영상에 담았어요."

◇'화이트 컬러' 여성→사회공헌 활동가

홍 이사는 다음 해인 2016년 협동조합 '무의'를 설립했다.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가진 당시 하버드대생 김건호씨의 제안으로 실행에 옮긴 일이었다. 휠체어 여행기 영상물, 지하철 교통 약자를 위한 환승 지도 등을 제작·무료 배포하는 게 이 단체의 일이다.

회사 내에서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17년 말 이베이코리아의 온라인쇼핑몰 '옥션'은 장애인 용품 코너 '케어플러스'를 열었다. 홍 이사가 기획한 일이다. 그는 옥션의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브랜드 '모카썸위드' 출범도 주도했다.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도 입을 수 있는 '유니버설(공용) 디자인' 브랜드다. 홍 이사는 이날 인터뷰 때 모카썸위드 긴소매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뒤 기장이 앞 기장보다 긴 디자인이다. 휠체어를 탔을 때 착용자의 속옷이나 속살이 드러나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홍 이사는 '사회 투쟁 경험' 없이 평범하게 대학 시절을 보냈다.
금융업 종사자인 남편을 만나 '화이트 컬러' 부부로 살았다. 홍 이사는 어느 순간 변해 있었다.
주요 언론들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회공헌 활동가로 그를 소개하고 있었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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