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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조선운송 창고에서 발견된 보물, 조선어큰사전

뉴시스

입력 2019.10.08 10:16

수정 2019.10.08 10:16

'CJ대한통운 80년사'에 실린 조선어큰사전 원고. (사진 = CJ대한통운 제공)
'CJ대한통운 80년사'에 실린 조선어큰사전 원고. (사진 = CJ대한통운 제공)
【서울=뉴시스】박주연 기자 = "찾았다."

1945년 9월 8일. 경성역(현 서울역) 조선운송(현 CJ대한통운) 창고를 뒤지던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학생들이 발견한 것은 '조선어큰사전'의 원고 뭉치였다.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인 주시경 선생은 1911년 '말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국어사전 편찬을 시작했고,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최현배·이극로·이병기 등이 주축이 된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의 전신)이 작업을 이어받아 대대적 사전 편찬에 나섰다. 하지만 1942년 10월1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했던 학회 회원들이 붙잡히며 조선어큰사전 원고는 경찰에 압수됐다.

'CJ대한통운 80년사'에 따르면 학회 회원들이 함경도 함흥과 홍원에서 투옥된 후 원고는 함흥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예심(1심) 재판의 증거물로 제출됐고, 징역형을 받은 네 사람이 항소를 할 때 경성고등법원으로 사건이 옮겨지면서 관련 서류와 증거물도 같이 서울로 보내졌다.


하지만 '조선어큰사전'의 원고 뭉치가 들어 있던 상자는 법원에 전달되지 않았다. 경성고등법원은 해방 사흘 전인 1945년 8월12일 상고 기각 판결을 내렸고, 해방 직후인 같은해 8월17일 함흥 감옥에서 나온 학회 회원들은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원고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경성역 뒤 조선운송 창고에서 인부들과 함께 화물을 살펴보던 역장이 상자속의 원고 뭉치를 발견하고 학회 에 이를 알렸다. 이렇게 빛을 보게 된 '조선어큰사전' 원고는 1947년 10월9일 한글날 기념식에 맞춰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사전 편찬에 참여한 김병제씨는 1946년 '자유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원고 상자의 뚜껑을 여는 이의 손은 떨리었다. 원고를 드는 이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었다"고 회고했다.

조선운송은 CJ대한통운의 여러 전신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 철도운송·화물자동차운송·해상운송·항공운송 등을 모두 수행했다. 이를 위해 주요역마다 화물창고를 뒀다.

당시 조선운송 본사는 서울역 앞 동자동 12번지에 위치해 있었다. 이 건물은 서울시 시가지 정비계획에 따라 1968년 철거됐고, 이 자리에 구 서울역 대우빌딩으로 익숙한 교통센터빌딩이 들어섰다.


조선운송은 해방 뒤 이름을 조선운수로 바꿔 국영기업이 됐고, 1962년 조선미곡창고에 합병됐다. 조선미곡창고는 합병과 함께 사명을 한국미곡창고로 바꿨고, 이름해 상호를 대한통운으로 변경했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거쳐 2011년 12월 CJ그룹 계열사로 편입, CJ대한통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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