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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전쟁 당시 '국난극복 현장' 인제 한계산성, 사적 된다

뉴스1

입력 2019.10.17 17:15

수정 2019.10.17 17:15

한계산성 하(下)성 남문지 정면. (인제군 제공) 2019.7.29/뉴스1 © News1 김경석 기자
한계산성 하(下)성 남문지 정면. (인제군 제공) 2019.7.29/뉴스1 © News1 김경석 기자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오는 21일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한계산성(寒溪山城)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3호로 지정해 관보 고시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인제 한계산성은 인제군 북면 한계리 설악산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유적이다.

한계산(해발고도 1430.4m)을 중심으로 동남쪽과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자연적인 암벽지대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성벽을 구축했다.

산성의 둘레는 약 7㎞에 달하며, 상성(약 1.7~1.9㎞)과 하성(약 5~6㎞)으로 구분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에서도 이미 상성과 하성의 존재가 명확하게 기록돼 있다.



인제 한계산성은 13세기경 축조된 산성이다. 그 입지와 축조양상을 볼 때 시대변화에 따른 성곽 확장과 성벽이 연장된 구조가 잘 나타나고, 성벽과 별도로 축조된 돈후(토축 또는 석축벽을 쌓아서 만든 파수보는 망대) 시설물을 갖추고 있다.

고려 시대 몽골과의 항전에서 사용된 입보용 산성으로서의 평면구조와 축성방식, 부속시설물이 변화되는 양상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중세산성이다.

특히 상성은 현재 남한 내에서 가장 험준한 곳에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지고 있는 등 13세기 험지위주 산성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한 상성과 하성 시굴조사 결과 고려~조선 시대의 다양한 유구와 유물도 확인됐다.

상성과 하성별로 시대적으로 비교되는 건물지 중심의 유구와 유물이 나와 한계산성 활용시기 등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들이 확인됐다.

인제 한계산성은 고려 시대 몽골과의 항전지이자 승전지로,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1259년(고종 46년) 몽고에 투항한 조휘 일당이 몽고 군사를 끌고 와서 산성을 공격했으나 점령하지 못했다고 나온다.

오히려 산성을 지키고 있던 방호별감 안홍민이 야별초군을 거느리고 나아가 습격해 모두 섬멸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한계산성은 30년 여몽전쟁의 최후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몽골 영향 아래 있던 쌍성총관부의 세력 확장을 저지한 국난극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또한 대몽항쟁기 5차와 6차 침입 당시 만든 입보산성으로, 성곽 변화과정과 고려말 조선초 공민왕의 반원정책, 동해안 일대의 왜구 침략 대비 등을 목적으로 축조한 성곽 양식 등을 비교‧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인제군은 한계산성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오는 25일 오후 2시 한계리 옥녀탕 휴게소 산성 진입로에서 축하행사를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