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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무대…'장애인은 할 수 없다'는 편견 맞서 노래했다"

뉴스1

입력 2019.10.28 08:01

수정 2019.10.28 08:07

청각장애아동 합창단 아이소리앙상블 지휘자 최숙경씨(42)와 단원 정한기군(14).2019.10.25© 뉴스1이승환 기자
청각장애아동 합창단 아이소리앙상블 지휘자 최숙경씨(42)와 단원 정한기군(14).2019.10.25© 뉴스1이승환 기자


아이소리앙상블 단원들© 뉴스1
아이소리앙상블 단원들© 뉴스1


노래하는 정한기군(오른쪽에서 세번째, 정군 어머니 제공)© 뉴스1
노래하는 정한기군(오른쪽에서 세번째, 정군 어머니 제공)© 뉴스1


[편집자주]'날 변화시킨 너.' 그들은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란 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이거나 가르치는 선생님, 신체적 결함을 보완해 주는 옷을 제작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들은 장애인 곁을 지키면서 더 배웠다고, 더 성장했다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됐다고 입을 모읍니다. <뉴스1>은 그들의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그리하여 장애인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존재임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선생님에게 ‘아이소리앙상블’ 합창단은 어떤 의미이지요?"
"……"

최숙경씨(42)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입술이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죄송해요.제가 괜히 분위기를 깨고 있네요." 울음을 참으며 최씨가 말했다. 다시 몇 분간 이어진 침묵. 그는 말문을 열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저도 배워요.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요."

최씨는 청각장애아동 합창단 '아이소리앙상블'의 지휘자다. 아이소리앙상블은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이 지난 2009년 창단해 지원하는 합창단으로 7~16세 단원 20명으로 구성됐다.

단원들은 청력 보조기 인공 와우나 보청기를 귀에 꽂고 '음'을 감지하며 노래한다. 관객들은 "'기적'이다"고 감탄하고, 최씨는 기적 같은 무대를 연출하는 지휘자다.

◇외롭고 말이 없던 아이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 건물의 지하 연습실에서 최씨를 만났다. 6년차 단원 정한기군(14)이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인터뷰용 사진 촬영을 위해 하얀색 악보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이모와 조카 사이처럼 친근해 보였다. 최 씨는 활짝 웃었고 한기는 그 또래 아이처럼 수줍게 웃었다.

중앙대학교 작곡과(합창 지휘)를 졸업한 최씨는 2009년부터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체류했다. 5년 뒤인 2014년 귀국해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아이소리앙상블 전임 지휘자였던 대학 후배가 어느 날 최씨를 커피숍으로 불러 제안했다. "언니, 지휘 한번 해보는 게 어때?"

최씨는 2015년 초 연습실 문을 열고 단원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첫 느낌을 묻자 그는 "외로운 느낌이었다"고 했다. 외로움이란 외딴섬처럼 고립돼 홀로 사는 듯한 느낌이다. 한창 뛰어놀 시기의 아이들은 어떤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학교에선 소통하기 어려우니까요. 꼭 장애 때문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먼저 친구들과 '깊이'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벽을 치는 건 아닐까 짐작했어요. 한기를 포함해 단원 대부분 너무 '얌전한 모습'이었어요."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게 중요했다. 속내를 털어놓고 장난치며 친해지는 '아주 평범한 과정'이 필요했다. 서로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믿음이 형성돼야 한다. 그래야 '합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공동체'의 의미를 일깨우는 게 합창단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최씨는 생각했다. "공동체의 일원임을 깨닫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그는 당시를 떠올렸다. 새가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듯,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와 타인을 만나 서로 의지하며 '단체 생활'을 경험하는 것. 최씨는 "단원들의 사회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매년 2박 3일 일정으로 합동 캠프를 떠났어요. 양평 등 교외 펜션에 머무르며 게임도 하고 공연 연습도 했어요. 자연이 어우러진 곳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보냈던 거죠. 공동체의 의미를 알아가는 '사회화'의 과정이었어요."

◇무대 위에서 얻은 용기와 자신감

한기는 원래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혼자 있길 좋아하고 말이 없었다. 그는 엄마 손에 끌려 합창단에 처음 들어왔던 당시를 떠올리며 털어놨다.

"제가 왜 여기(연습실)에 있는지 통 모르겠더라고요. 차라리 집에서 게임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연습실에 가기 너~무 싫었어요."

한기는 합창단의 어엿한 리더로 성장했다. 언론 인터뷰를 비롯한 주요 일정에 합창단을 대표해 참여한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전혀 떨지 않았다. 최씨는 그런 한기가 믿음직스러운 듯했다.

한기는 무대 위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수많은 관객 앞에서 '마법의 성'을 부르고 '내가 바라는 세상'을 노래하며 긴장감을 떨쳤다. 쏟아지는 환성과 박수 소리를 들으며 용기를 얻었다.
다른 단원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편견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장애가 있다고 무언가 못할 거라고만 생각하는 건 편견이에요. 비장애인도 안경을 벗으면 앞이 잘 안 보이잖아요? 장애도 그와 다른 게 전혀 없어요. 비장애인도 안경을 착용해야 앞이 잘 보이듯, 우리도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끼면 충분히 잘 들을 수 있어요. 대화하고 음악 듣고 노래 부를 수 있어요."

'세상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한기의 대답이었다.

④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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