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 보수공개 체계 논의 어떻게
윤리적 측면으로 '많고 적음' 따져선 안돼
이사회에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나 능력 대비 많나 등 합리적 측면서 다뤄야
한국도 경제적 사회적 합의 거쳐 보수 공개규정 개선해야 기업에 도움
윤리적 측면으로 '많고 적음' 따져선 안돼
이사회에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나 능력 대비 많나 등 합리적 측면서 다뤄야
한국도 경제적 사회적 합의 거쳐 보수 공개규정 개선해야 기업에 도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임원조차 거액의 연봉과 퇴직금을 챙기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지나치게 높은 경영진 연봉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식배당만으로도 막대한 수입을 얻는 재벌 총수들이 급여와 퇴직금 명목으로 상당한 보수를 받고 있는 것은 한번쯤 짚어볼 만한 문제다.
특히 최고경영자(CEO)와 일반 직원의 급여 차이가 크게 벌어지자 일부 선진국은 이른바 '살찐 고양이법'을 만들었다. 살찐 고양이는 '탐욕스럽고 배부른 자본가 혹은 기업가'를 뜻한다. 프랑스는 공기업의 연봉 최고액이 해당 기업 최저연봉의 20배를 넘지 못하도록 했고, 스위스는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 결정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 중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 재계와 정부는 경영자 보수공개 체계에 대해 어떤 논의를 해야 할까. 한미재무학회(KAFA) 정연국 리버사이드대 교수(KAFA 회장)와 김용헌 신시내티대 교수, 이정훈 튤레인대 교수, 이지윤 조지워싱턴대 교수에게 진단과 개선 방향을 물었다. 출범 28년째를 맞은 KAFA는 미국 등에 거주하는 해외 한인 재무학자들이 조직한 단체로, 국내외 관련 학회와 세미나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상당수 그룹 총수와 전문경영인의 올 상반기 보수는 전년 대비 증가했다. 일반 직원과 달리 최고 400%의 퇴직금 지급률을 적용받아 100억원 넘는 퇴직금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이런 점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김용헌 교수=이런 사례가 계속 나타나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은 하락할 수 있다. 강대국에서 벌어지는 소득격차와 불평등은 글로벌 무역전쟁과 폭력적인 국제관계를 급증시킨 근본 원인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글로벌 경제의 심각한 침체를 불러왔다는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올해 노벨경제학 수상자)의 통찰을 한국을 포함한 모든 자본주의 경제체제 국가들이 귀담아들어야 한다.
▲정연국 교수=미국도 경영인과 일반 직원의 소득 격차에 대한 관심이 높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부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문제화하면서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다만 경영인의 보수를 윤리적인 측면만 강조하며 규제할 경우 자본주의의 원칙이 침해되고, 이들의 최고 목표여야 하는 기업가치의 극대화에 대한 인센티브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규제가 지나치면 우수인력이 한국을 빠져나가고, 이것은 기업가치 하락으로 이어져서 결국은 주주나 노동조합, 이해관계자 모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이지윤 교수=경영자가 이사회 등에 권력을 행사해 보수가 높은 것인지, 아니면 주주가 동의한 경영진 역량에 대한 시장가격인지를 두고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주주들이 400%의 퇴직금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영자가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비합리적 보수가 책정된다면 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등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된다. 이사회 등 경영진 관련 의사결정을 내리는 조직이 경영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과 한국의 임원보수 공개규정 차이는.
▲이지윤 교수=미국은 1930년대부터 CEO 보수를 공개하기 시작했고 약 60년 후 캐나다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뒤를 이어 유럽 국가도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점차 공개항목을 늘려 기본급, 보너스, 주식, 스톡옵션, 퇴직금 등을 자세히 공개하고 있다. 한국도 최근 보수공개 제도를 도입했지만 미국처럼 자세한 사항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미국이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과도한 경영자 보수를 제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미국과 캐나다 모두 경영자 보수공개를 의무화한 후 경영자의 보수가 급증했다. 경영자 보수를 적게 준다는 것이 공개되면 결국 해당 기업 경영자의 역량이 낮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보수를 늘린다는 이유였다.
―한국의 임원보수 공개규정이 느리게 개선되는 이유는.
▲김용헌 교수=경제적·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바람직한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로 임원보수 정보공개의 물꼬가 트였다. 미국도 2002년 SOX(사베인즈-옥슬리)법안을 채택할 당시 자발적 분위기는 아니었다. 뒤늦게라도 강제적 방법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이 원인이었다.
▲이정훈 교수=자산운용 분야를 예로 들면 개선이 느린 것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경우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2005년부터 뮤추얼펀드 매니저들의 보수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개 정도는 일반 회사의 CEO 보수정보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자산운용업계를 대변하는 단체들의 로비 때문이다.
―임원보수 공개 규정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정연국 교수=임원보수가 회사 주가에 연동되지 않고 다른 요인에 연계돼 회사 구성원이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없게 돼 있다면 기업과 정부 규제기관들이 전문가들과 공청회를 열어 임원보수 책정과 공개 원칙에 대한 합의를 이뤄 모든 것을 투명하게 만들면 될 것이다.
▲김용헌 교수=기업가치 창출에 대한 기여도를 근거로 총수와 CEO의 보수를 책정하는 지속가능한 경제민주화의 기본원리를 세우기 위해 국민적 합의를 속히 이끌어내고, 정부와 기업은 이를 기초로 일괄적이 아닌 차별적인 임원 보수공개 규정의 방안을 심도 있게 추진해야 한다.
▲이지윤 교수=미국의 세이온페이(Say-on-Pay) 제도처럼 주주들이 경영자 보수에 대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임금체계 공개를 의무화함으로써 기업들이 성과와 보수를 연동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정훈 교수=미국 자산운용 업계 역시 완전한 공개가 이뤄지진 않고 있다. 2005년 SEC에 의해 채택된 규정도 부분적인 공개만 규정하고 있는데 성과보수의 복잡한 효과와 그에 따른 업계 반발을 고려한다면 점진적인 공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리= map@fnnews.com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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