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정치권과 증권업계 일각에서 증권시장의 정규장 매매 거래 시간(이하 거래시간)을 30분 단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번달에는 투자자들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지금처럼 거래시간이 30분 연장된 것은 약 3년 전이다. <뉴스1>은 그동안의 주식 거래량·거래규모 변화 추이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에 적합한 거래시간에 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또한 해외 주요국들의 거래시간 등 비교 가능한 사례들을 살펴봤다.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증권시장 거래시간 30분 단축에 관한 설문조사가 이르면 이달 초 실시된다. 거래시간을 연장한지 3년이 지난 가운데 일각에서 거래시간의 원상복귀 필요성이 제기돼 왔으나 이를 기관·일반 투자자에게 묻는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설문 조사를 계기로 거래시간을 둘러싼 찬반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일각과 노조 측은 거래시간 연장 효용성이 별로 없는 만큼 증권업계 종사자의 노동 강도를 완화하기 위해 거래시간을 30분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해외 주식시장 개장 시간과의 연계 효과를 고려해 현재의 운영시간을 유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투자자 대상 설문조사 '처음'…유보적 입장 금융위 "전반적으로 검토"
4일 정치권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금융투자협회·한국거래소 등은 증권시장 거래시간 30분 단축에 관한 설문조사 실시를 위해 조사기관, 설문문항, 설문대상 등을 놓고 막판 협의하고 있다. 금투협·김 의원실이 설문조사를 주관하고 김 의원실·조사기관이 설문문항을 마련하며 금투협·거래소가 제반 비용을 대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조사 대상은 기관투자자와 일반투자자다.
지난 2016년 8월1일부터 증권시장의 정규장 매매 거래 시간은 장 마감 시간을 30분 늦추는 방식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로 30분 연장됐는데, 장 마감 시간을 다시 30분 단축해 3년여 전으로 원상복귀하는 안에 대해 다각도로 물어보는 방식으로 설문조사가 이뤄진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설문문항은 조사기관과 함께 결정할 것"이라며 "늦어도 11월 초에는 설문조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논의 중"이라고 했다. 김 의원실은 주 52시간 근무제 등을 감안해 거래시간 단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거래시간을 단축하려면 거래소 규정만 개정하면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금융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후보자 시절 "(현재 증권시장 거래시간은)투자자의 거래 편의성 제고, 글로벌 시장과의 연계 확대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서도 "불필요하게 근로 부담만 늘린다는 주장도 있는 만큼 제반 사정을 고려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중국 주식시장 등과 거래시간이 겹치는 게 매매효율성 면에서 좋은 점이다. 이 부분을 무시하고 예전으로 다시 복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며 "그런데 근무시간 등 근로 조건과 관련해 계속 거래시간 단축 요구가 있으니깐, 전반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씀"이라고 부연했다.
찬반 양론이 첨예한 만큼 내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거래시간 단축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무금융노조는 지난 8월12일 은 위원장에게 보낸 성명에서 "박근혜 정권 시절 추진됐던 주식거래시간 30분 연장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만 강화시켰다"고 밝혔다. 여권 일각에서 거래시간 원상복귀를 주도하고 나선 것도 지난 정부 정책 폐기 추진을 통해 여당의 정치적 선명성을 짙게 하고, 현 정부가 중점 추진해온 주 52시간 근무제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 52시간제 맞춰 단축해야" vs "해외연계 효과 고려를"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거래시간 30분 연장에 따른 거래량·거래대금 증가 등 시장 활성화 효과는 없고,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근무시간만 늘렸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히 올해 7월1일부터 증권사(300인 이상)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법정 시행되면서 거래시간 원상복귀론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김호열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장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당초 거래시간을 30분 연장하면서 내세웠던 목표가 달성된 게 없다. 반면 증권사에는 인건비 부담, 노동자에게는 노동시간 장기화 등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하는 부작용만 생겼다"며 "거래시간 30분 연장은 기존 운영시간인 6시간 중 8%의 시간을 늘리는 데 그친다. 이를 통해 거래량·거래대금 증가 등 주식 활성화 도모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거래시간을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해외 주식시장 개장 시간과의 연계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 오후 3시30분 장 마감을 시행한 지 3년이 지났는데 이 시스템을 되돌렸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선 거래시간을 연장한 본래 목적이 거래량·거래규모 증가보다는 투자자의 투자 기회를 확대하고 해외 주식시장과의 연결성을 높이는 데 있다는 것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시간을 30분 연장한 것은 거래 활성화 측면도 있지만 투자자에게 투자 가능한 기회나 중국 등 글로벌 시장과 매매시차 축소를 통한 가격발견 효율성 제고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거래시간을 원상복귀하면 이와 맞물린 외환시장 거래시간도 단축해야 할 수 있어 추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같이 고빈도매매가 활성화되지 않은 시장에서 거래시간 연장이 거래량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IT기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거래시간 30분 연장으로 인한 비용을 감당 못할 수준도 아니다. 특히 투자자 편의성 제고 측면에서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호열 본부장은 "매수자, 매도자는 본인에게 좋은 가격이 나왔을 때 거래한다. 특정 시간대에 매여있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 편의를 위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논거다"라며 "거래시간 30분 연장은 경제 활성화의 가시적인 성과를 쫓은 박근혜 정부가 생색내기용으로 마련한 전시행정,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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