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기관투자가들을 위해 주주총회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컨설팅 업체인 기관투자가주주서비스(ISS)를 인용해 지난달 18일 현재 S&P500 지수 편입 기업의 53%인 266개사가 회장·CEO 직을 분리했다고 전했다. 비율로는 2017년과 같은 수준으로 사상최고다. 2009년 35%에서 분리 추세가 크게 강화됐다.
그렇지만 상당수가 자발적으로 나섰다기보다는 주주들의 압력이나 대형 악재에 몰려 주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꼼수로 동원된 의혹이 짙다. 보잉 737 맥스 추락과 운항중단으로 위기에 몰린 보잉은 데니스 뮐린버그 회장 겸 CEO 교체 압력을 회장과 CEO직 분리라는 대안으로 얼렁뚱땅 넘어가고 있다. 뮐렌버그를 이사회 회장에서 내려오게 하고 CEO만 맡도록 했다.
AT&T는 지난달 28일 행동주의 기관투자가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대립을 끝내고 휴전하면서 유화책을 내놨다. 이사 2명을 늘리고, 내년에 비핵심 사업을 매각해 100억달러를 확보하며, 타임워너를 인수하면서 끌어들인 빚도 모두 갚아버린다는 것이 골자다. 대신 지배구조 개선 압력은 랜덜 스티븐슨 회장겸 CEO가 은퇴하면 회장과 CEO를 분리하겠다는 것으로 대신했다. 가짜 계좌 스캔들로 명성에 금이 간 투자은행 웰스파고는 독립적인 여성 회장은 유임하는 대신 찰스 샤프를 새 CEO로 임명했다. 나이키, 언더아머, 최근 만신창이가 된 위워크도 회장과 CEO를 분리하고 있다.
분리는 주주들을 다독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비영리 투자자 자문단체인 애즈유사우(As You Sow:당신이 씨를 뿌리면)의 프로그램 매니저인 로자나 랜디스 위버는 "아직 분리하지 않았다면 (회장·CEO) 분리는 주주들을 달래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회장과 CEO 분리는 경영 책임과 이사회의 독립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도입됐다. 통상 CEO는 최고 경영자로 기업의 일상 업무를 관장하고, 회장은 이사회 수장으로 경영진을 감독한다. 회장과 CEO를 한 명이 겸직하면 이때문에 권한이 한 곳에 집중되고 CEO가 모든 권한을 한 손에 틀어쥐게 된다. 다트머스대 터크 경영대학원의 기업지배구조 연구소장인 에스펜 에크보 교수는 "이사회는 CEO를 고용하고, 해고하며, 급여와 상여금을 책정한다. 이게 이사회의 핵심 업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이때문에 "CEO가 그 이사회의 회장이 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2010년 발효된 도드-프랭크법도 분리를 자극하는 촉매가 됐다. 이 법에 따르면 각 기업은 회장-CEO 지배구조를 공개해야 하고, 이에 관해 설명도 해야 한다. 대개 주총 컨설팅 업체와 연금 같은 대형 기관투자가들은 분리를 선호한다. 미 최대 연금펀드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기금(캘퍼스)는 9월 기업지배구조 원칙에서 "CEO와 회장 겸직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이뤄져야 한다"고 못박기도 했다.
그러나 분리가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회장, CEO 분리가 주주 이익을 높인다는 일부 연구 결과가 있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터크 경영대학원의 에크보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가 실적을 결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상식이 답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분리가 항구적인 것도 아니다.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의 경우 2017년 짐 엄플비를 CEO로 승진시키면서 회장과 CEO가 분리됐지만 이듬해 말 엄플비를 회장으로 임명하면서 겸직이 부활했다.
당시 엄플비가 회장으로 승진하기 전까지 과도기 회장은 이번에 보잉 회장으로 임명된 데이비드 칼훈 블랙스톤 그룹 CEO이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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