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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돌고 도는 입시제도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07 16:58

수정 2019.11.07 16:58

[여의나루]돌고 도는 입시제도
입시를 둘러싼 백가쟁명이 다시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입시제도 탓에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 된 지 오래되었다. 관료들은 정권 입맛에 맞는 새로운 제도를 내놓느라, 학부모와 학생들은 그에 맞추느라 몸살을 앓는다. 사교육이 왕성해지는 이유도 공교육만으로는 매년 바뀌는 제도를 숙지하는 일조차 버겁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우리처럼 입시 혼란이 연례행사인 나라가 있는지 묻고 싶다. 나 역시 조석변하는 입시제도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한 편이다.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논란은 여러 면에서 우려를 갖게 한다.

우선 정권 차원의 신뢰위기를 자초하는 일이다. 정부는 지난해 '대입제도개편 공론화 위원회'를 만들어 시민참여단에 입시제도 논의를 맡겼다. 위원회는 3개월간의 논의 끝에 '2022학년도 정시 45%'로 수능 위주 전형의 확대를 요구한 바 있다. 교육부는 그럼에도 '정시 30%로 확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굳이 '공론화' 과정을 거친 이유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결정이었다. 어쨌든 많은 논의를 거쳐 일단 확정된 사안이 문재인 대통령의 한마디로 재검토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교육부는 당장 내년부터라도 정시확대를 밀어붙일 생각일 것이다. 서울 소재 13개 대학의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전수조사 결과를 서둘러 발표한 데서 알 수 있다. 명시적으로 대학들에 강요할 수 없으니 재정지원과 연계해서 정시확대를 주문할 게 분명하다. 스스로 신뢰를 허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학종 혹은 수시에 대한 비판은 잘못된 진단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문 대통령의 입시제도 언급은 조국 전 장관 가족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촉발한 것이다. '불공정'에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수시 혹은 정시라는 입시제도 자체가 아니다. 제도에 내재한 합법적 불공정 운운도 엉뚱한 곳을 짚은 것이다.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당연히 교과활동 외에 필요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학생 수준의 논문도 써보고, 체험학습 보고서도 내고, 리더십 활동에도 참여한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고교생을 의학논문의 제1저자로 만들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2~3일 출석하고 15일짜리 인턴증명서를 끊어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인턴활동예정증명서라는 기상천외한 문서를 만들지도 않는다. 대학 총장 표창장을 받으면 액자까진 아니어도 집에 고이 모셔놓는 게 당연하다. 원본을 찾을 수 없고 사본만 있는 표창장은 상상할 수 없다. 거창하게 사회정의를 부르짖지는 않지만 그런 행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게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이다.

정시확대가 부당하다거나 수시가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두 제도 모두 장·단점이 있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선에서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학종 등 수시의 경험이 쌓이면서 대학마다 다양한 유형의 학생 선발 방법이 만들어 지고 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학생, 학교생활에 충실한 학생, 농어촌지역 학생, 리더십을 발휘한 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전형이다.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수능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방법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정시가 오히려 사교육 위주 학생에게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언제까지 교육의 본질이 아닌 입시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현 정부 임기 초반 입시제도 논란을 벌이다가 교육개혁의 호기를 놓치고 말았다. 또 다른 입시 갈등은 오래 끌 일이 아니다.
논쟁을 촉발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논란을 마무리한 후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교육개혁 논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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