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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 확산하는데…'피의사실공표' 핑계 입닫은 수사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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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 확산하는데…'피의사실공표' 핑계 입닫은 수사기관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범죄피해 확산하는데…'피의사실공표' 핑계 입닫은 수사기관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가운데)이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 관련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사와 검찰 관계자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범죄피해 확산하는데…'피의사실공표' 핑계 입닫은 수사기관
딸을 KT에 부정채용 시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가운데)이 지난 7월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에서 서울남부지검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전 고소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윤재옥, 김성태, 장제원 의원. /뉴스1 © News1 류석우 기자


범죄피해 확산하는데…'피의사실공표' 핑계 입닫은 수사기관
민갑룡 경찰청장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19.9.18/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수사기관을 사칭한 보안 애플리케이션(앱)을 휴대폰에 설치하게 한 뒤 돈을 가로채는 새로운 유형의 보이스피싱 범죄가 적발됐다. 경찰청 앱과 유사한 가짜 앱을 이용한 신종 범죄에 200명 넘는 피해자가 74억원가량의 피해를 입었다.

앱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기존에 알려진 적이 없는 만큼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한 경찰은 언론을 대상으로 수사결과 브리핑을 열 방침이었다.

하지만 '피의사실공표죄'가 발목을 잡았다. 피의사실공표죄는 수사기관이 범죄 피의자가 받는 혐의 내용을 외부에 알릴 경우 이를 처벌하게 정한 형법 조항이다. 그동안 사문화 돼 있었지만 울산지검이 경찰관 2명을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입건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피의사실공표죄를 둘러싼 논의가 가열되면서 결국 경찰은 브리핑 없이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이 사건은 현재 기소까지 이뤄졌지만,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으면서 사건이 재판에 넘겨진 이후에도 피해자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현재 검찰과 경찰은 서로를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피의사실공표죄를 둘러싼 수사기관 간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범죄 피해를 막지 못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범죄 예방 기능이 쪼그라들 우려가 있다는 것은 피의사실공표죄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힌다. 이 부작용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기관 간 협의나 자체 가이드라인 마련 등 관련 논의가 하루빨리 마무리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잠자던 피의사실공표, 檢이 警 입건하며 논의 촉발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는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기 전에 피의사실을 외부에 알리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게 정하고 있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입법됐으며, 입법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입법 취지는 검찰이나 경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Δ아직 재판을 통해 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에게 이미 죄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져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고 Δ피의자가 범죄로 인한 법적 책임 이외에 명예훼손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이를 막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의사실공표죄는 그동안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였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이후 347건의 피의사실공표 사건이 접수됐지만 처벌이 이뤄진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기소 사례도 현재까지 전무하다.

그러다 지난 6월 울산지검이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을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입건하면서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울산 지역 내 검·경 갈등 성격이 짙은 사안이었지만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이후 검찰과 경찰 전체의 문제로 자리잡았다.

피의사실공표죄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를 향한 수사와 맞물리면서 관심도에 정점을 찍었다. 법무부가 피의사실공표 관련 자체 훈령인 수사공보준칙을 개정하겠다고 했는데, 조 전 장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시기상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이후 민주당 의원들이 '조 전 장관 일가 수사상황을 외부에 흘렸다'며 검찰 관계자들을 고발하는 등 피의사실공표죄 고소·고발사건이 점차 늘어나면서 수사기관의 언론 브리핑은 대폭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검·경 갈등국면에 논의 교착…범죄 예방 기능 축소 우려

검찰과 경찰은 현재 서로에게 피의사실공표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수사 결론을 내려면 기관 간 법 해석이나 적용 범위에 협의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부작용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울산에서는 검찰이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경찰을 입건했고, 경찰은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자신의 'KT 딸 채용청탁' 의혹을 수사한 검사들을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고소한 건을 수사 중이다.

수사공보 기능이 전면적으로 축소되면서 일선의 혼란이나 알 권리 침해로 인한 피해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범죄 예방 기능이 쪼그라들면 국민 피해가 불가피하다. 하루빨리 결론을 내야 하지만 검·경 수사권조정 문제로 조성된 양 기관 간 갈등 때문에 논의가 더뎌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경찰은 검찰이 기소권을 가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사실공표죄는 벌금형이 없어서 만일 검찰이 기소를 하면 무죄가 나오지 않는 이상 최소 집행유예"라며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으면 직권면직이 되므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위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법무부에 공통적 기준을 마련하자고 요청하고 있지만 법무부는 일단 각자의 훈령을 마련하되 장기적으로 추진하자는 입장으로 보인다"며 "법무부가 지난달 30일 먼저 훈령을 발표했는데 우리도 별도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공통 기준'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이 모두 수사기관이라고는 하지만 검찰은 기소를 담당하고 있어 경찰과는 기능이 다르다"며 "그래서 공통 기준을 마련하는 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논의가 좁혀지지 않다 보니 수사기관 일선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A경정은 "이럴 때일수록 지휘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선제적인 기준을 마련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며 "모든 공표행위를 일절 금하고 있어 범죄 예방이라는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이 있다"고 토로했다.

◇경찰 "공통기준 마련하자"…전문가들 "범위 구체화하고 법 개정"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는 지난달 30일 자체 훈령을 발표했다가 반발에 직면했다. '오보 기자 출입제한 조치' 항목을 훈령에 포함시켰는데, 오보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취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경찰은 경찰청과 법무부가 각자 훈령을 두기보다는 공통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궁극적으로는 피의사실공표죄 조항을 개정해서 법적 보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4일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같은 수사 업무를 하는 기관끼리 기준이 다르면 안 되는 게 맞다"며 "입법이 이뤄지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피의사실공표죄 자체는 사문화된 만큼 재손질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피의사실공표죄의 순기능은 유지하되, 알 권리와 공익적 기능도 담보할 수 있게 보완하자는 것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피의자의 기본권과 범죄와 관련된 국민의 알 권리 등 헌법상의 이익들을 조정해야 한다"며 "어느 범위까지 피의사실공표를 허용해야 기본권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면서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피의자의 초상이나 성명 등 개별 인격권을 보호하는 것이 헌법상 정당하더라도, 국민은 기본권을 보장받고 범죄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알 권리가 있다"며 "피의사실공표죄를 개정하면서, 공익상 필요한 경우에 대해서는 따로 법률로 예외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지미 대한변호사협회 사법인권소위원회 변호사도 현재 법안의 추상성을 지적하면서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준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돈과 권력이 있는 유력자들일수록 피의사실공표죄로 스스로를 보호할 개연성이 더 크다는 것도 문제로 꼽았다.

김 변호사는 "공적 인물일수록 피의사실공표죄를 강하게 주장한다는 점은 역설적"이라며 "이의제기의 수단을 갖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중에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그 과정이 추적·보도되지 않는 한 범죄자 낙인을 지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

또 "연쇄살인범 같은 강력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문제로 촉발된 신상공개제도는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 의해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며 "피의사실공표에 대해서도 신중한 결정을 위해 이 같은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