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통계청장과 통계인의 사명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11 17:11

수정 2019.11.11 17:11

통계 분식하면 정책 오판 불러
좋은 통계 만들려 애쓰면 안돼
정치적 무풍지대 남아 있어야
[염주영 칼럼]통계청장과 통계인의 사명
강신욱 통계청장은 통계청보다는 청와대가 적성에 맞는 듯하다. 그는 문재인정부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그런 열성이 보탬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통계청장이고, 그 자리는 그렇게 일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강 청장은 지난달 비정규직이 1년 만에 86만명이나 늘었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증가폭이 전년도(3만6000명)의 24배나 돼 충격을 주었다.
통계 내용보다 더 충격스러운 것은 그의 다음 발언이었다. "이 통계를 전년도와 비교하면 안된다"고 했다. 문재인정부 '비정규직 0' 정책에 누가 되는 보도가 나올까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통계청이 만든 통계를 통계청장이 부정하는 모습이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다음 날 유승민 의원(바른미래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계로 국민을 속이려는 통계청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으로 경제전문가인 유 의원은 "통계청과 기재부가 명백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했다. 강 청장은 조사방법이 달라져서 전년도와 비교하면 안된다고 하고, 유 의원은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한다. 나는 누구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국가통계를 신뢰성 논란에 휘말리게 한 것만으로도 통계청장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국가가 통계를 작성하는 목적은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분석을 통해 변화 추이를 파악하는 데 있다. 물론 표본이나 조사방법 등이 크게 달라지면 시계열 분석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통계 작성기관은 사전에 시계열 단절을 공표해야 한다. 또한 기존 방식과 새 방식으로 조사한 수치를 함께 제시해 비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강 청장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 시계열 단절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통계청은 지난해 5월 저소득층 소득이 큰 폭으로 줄어든 가계소득 통계를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문재인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저소득층 소득을 늘려주려고 최저임금을 많이 올렸는데도 결과는 반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강 청장이 나섰다. 표본을 수정해 저소득층 소득이 좋아지도록 통계를 고쳐 청와대에 냈다. 며칠 후 문재인 대통령은 이 통계를 보고 "최저임금은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다. 그때는 이미 곳곳에서 최저임금 과속인상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새 통계는 대통령의 눈을 가려 정책조정 시기를 놓치게 했다.

통계법은 통계청의 동의나 협의 없이 다른 기준을 적용해 통계를 작성·변경·공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장이었던 그가 왜 통계청이 만든 공식 통계를 무단으로 변조하는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새 통계는 석달 뒤 그를 통계청장으로 발탁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통계왜곡 논란이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경기정점 판단을 뚜렷한 이유 없이 장기간 유보하거나 소득분배지표 등을 고칠 때마다 의혹의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통계는 현실을 들여다보는 눈이다. 눈이 바르지 않으면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고, 올바른 정책도 펼 수 없다.

통계청장은 있는 듯 없는 듯 일하는 것이 정상이다. 강 청장만큼 자주 언론에 이름이 등장한 통계청장은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통계인은 좋은 통계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된다. 오로지 정확한 통계를 생산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통계청장 임기제 도입이 시급하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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