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가슴 뭉클한 휴머니즘을 녹여내며 최근 종영한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 연출 차영훈 강민경, 이하 '동백꽃')이 쫄깃한 긴장감으로 휩싸일 때는 바로 연쇄살인마 까불이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훈훈함으로 넘치는 '동백꽃'은 까불이만 등장하면 단숨에 스릴러 돌변했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의 해피 엔딩을 방해하는 '까불이 찾기'에 시청자들의 신경이 집중됐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밝혀진 그 정체는 눈에 띄지 않던 조연 '철물점 흥식이'였다. 드라마의 초중반까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미미했던 흥식이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의심을 샀고, 후에 사람들의 호의를 '동정' 혹은 '무시'로 받아들이고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라는 점이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배우 이규성은 소심한 흥식이부터 분노를 폭발시키는 까불이까지 진폭이 큰 감정을 연기로 풀어내야 하는 이 까다로운 캐릭터에 겁 없이 도전했다.
-'동백꽃 필 무렵'을 마쳤다.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에 보내기가 더 아쉽겠다.
▶마지막 촬영을 했을 때까지는 느낌이랄 게 없을 정도로 어벙벙 하기만 했는데 마지막 방송을 보니 그제야 많은 감정이 밀려오더라. 좋은 작품을 해 감사하고, 신기하고, 떠나보내야 하니 아쉬움도 크다.
-까불이 역할로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인지도가 높아진 걸 느끼나.
▶그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연기했는데,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는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더라. 처음 느꼈을 때가 부모님 신발을 사러 한 브랜드 매장에 갔는데 직원 분이 날 알아보시는 거다. 그게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
-처음부터 캐릭터의 정체를 알았는지 궁금하다.
▶오디션을 볼 때까지는 몰랐다가, 합격을 하고 나니 흥식이의 설정을 알려주셨다. 그 상태로 대본 리딩도 했는데 촬영을 할 때 감독님이 '까불이는 흥식이가 될 수도 있고, 아버지가 될 수도 있어'라고 하시면서 또 혼란을 주시는 거다. 그래서 나는 흥식이가 까불이일 경우와 아닐 경우 모두를 준비했다. 현장에서 같은 대사를 할 때도 극과 극 감정으로 대사를 했다. 그런데 작가님이 워낙 글을 잘 쓰셔서 '이 대사는 이 감정으로만 해야 돼'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이후에 흥식이 아버지 배역이 확정된 뒤, 흥식이가 까불이라는 것이 결정됐다. 그것도 거의 끝까지 흥식이와 아버지, 감독님, 작가님만 알고 있었다. 같은 장면도 흥식이와 아버지, 대역 분이 모두 촬영을 해서 스태프들에게도 혼란을 줬다. 그만큼 보안을 유지했다.
-그만큼 '동백꽃 필 무렵'일 이끄는 또 다른 한 축이 '까불이 찾기'였던 게 아닌가. 그런데 초반에 많은 사람들이 흥식이를 까불이로 지목해 긴장도 됐겠다.
▶흥식이가 초반엔 눈에 띄지 않는 인물 아닌가. 11부 엔딩에서 고양이 밥을 주기 전까지는 비중이 거의 없어서 오히려 너무 존재감이 없을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흥식이를 까불이로 추측하는 것이 신기했다. '전반에 이렇게까지 집중되면 나중엔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이후에는 오히려 편해졌다. 작가님의 글과 감독님의 연출력을 믿고 연기했다.
-방금 말한 것처럼, 흥식이는 초반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다가 극의 후반부에서 본인의 정체를 알리고 본성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연기 톤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대본이 극비여서 어떤 대사나 상황이 전개될지는 책이 나와봐야 알았다. 그래서 흥식이가 까불이가 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나 홀로 소설을 썼다. 여러 상황들을 생각해서 작가님이 어떤 글을 쓰시든 한 번쯤은 예상한 것이도록 한 거다. 까불이라는 인물 자체가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하지 않나.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흥식이의 캐릭터 분석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흥식이가 단순히 사이코패스라고는 생각을 안 했다. 물론 그렇게 정의 내릴 수는 있지만, 흥식이는 좀 다르다. 일단 그 친구는 기 센 사람들, '옹벤져스' 앞에서는 분노 조절을 잘한다.(웃음) 그래서 그 사람들 앞에 잘 안 가려하고. 또 살인은 저지른 후에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기보다 본인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살인 그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찌질한 놈'인 거다.
-흥식이는 어쩌다 까불이가 됐을까.
▶이건 '오피셜'은 아니다. 나 혼자 소설을 써본 걸로는 주변에 잘못한 일을 바로 잡아줄 어른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흥식이의 아버지는 막노동을 해 늦게 들어오고 어머니는 없었다. 외로운 상태에서 고양이를 죽이고 이를 단순한 놀이라고 생각한 거다. 그때 '안 돼'라는 한 마디만 해줬으면 달라졌을 텐데, 잘못을 알려줄 사람이 없지 않았을까. 그게 커져 지금까지 온 거다. 사람의 부재가 괴물을 만들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아버지가 까불이로 지목돼 잡혀갈 때 흥식이가 눈물을 흘리지 않나. 그마저 연기였을까.
▶나도 그 상황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다. 용식이가 아버지를 잡으러 철물점에 왔을 때 흥식이가 팔을 잡고, 방으로 화면이 점프한다. 바로 용식이를 쫓아갈 수도 있었는데 시간을 두고 후다닥 올라온 이유, 작가님이 그 시간을 준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흥식이가 용식이와 아버지 모두를 속일 생각을 했다고 봤다. 용식이에게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아버지에게는 변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 속이려 한 것이다. 아버지가 잡혀 들어간 뒤에도 모든 범죄를 자신이 했다고 하게끔. 흥식이 나쁜 놈이다.(웃음)
-본인의 해석에 따른 연기에 대해 작가가 따로 코멘트 해준 부분은 없나.
▶ 한 번 뵐 자리가 있어서 '제가 작가님 뜻에 어긋나게 생각했을까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저 좋다고 해주셨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작가님의 글 자체가 너무 좋았다. '어떻게 이렇게 잘 쓰시지' 하고 감탄하게 된다. 1~4부를 보고 팬이 돼 직접 사인도 받았다.
-흥식이의 검거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동백이가 맥주잔으로 내려치는 것부터 '옹벤저스'의 활약까지.(웃음) 옹산을 들썩인 까불이의 최후가 너무도 찌질하고, 본인이 불리한 상황이 되니 그 살기가 뿜어 나오지도 못하는 느낌이랄까.
▶맞다. 그 장면은 작가님이 의도한 장면이다. 까불이에게 주인공 같은 스포트라이트가 가지 않게, 검거하는 상황을 무겁지 않게 풀고 싶어 하셨다. 그런 분위기가 잘 표현된 듯하다. 맥주잔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웃음)
-연기하면서 감정 소모 탓에 힘도 많이 들었겠다.
▶ 식이라는 캐릭터에 애정이 있는 만큼 마음속 윤리의식과 싸웠다. 흥식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 얼른 빠져나오려 하고…매일 악몽도 꿨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N인터뷰]②에 계속>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