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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앤 사람> 한국 프로야구계 발칵 뒤집은 '송정규 신드롬' 어디까지

노주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28 10:15

수정 2019.11.28 10:56

글로벌한 시각에 능통한 외국어 구사능력까지
탁월한 예지력에 '한국의 손정의'라는 별명도
송정규 롯데자이언츠 전 단장 겸 전 한국도선사협회 회장.
송정규 롯데자이언츠 전 단장 겸 전 한국도선사협회 회장.
[파이낸셜뉴스] '혹시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신가요? 롯데자이언츠는 한국 최고의 열정팬들을 갖고 있지만, 끝모를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1992년 롯데자이언츠 우승에 큰 역할을 했던 송정규 전 롯데자이언츠 구단 단장이 부진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놨습니다.'
최근 발간된 '월간조선 12월' 편집장이 송 전 단장의 특별기고 <롯데자이언츠는 왜 추락했나..야구수도 부산의 심벌로서 다시 비상하려면>을 소개한 글귀다.

대한민국 최연소 상선 선장이자 열렬 야구팬인 송 전 단장의 '롯데자이언츠 필승전략'이 연일 주요 언론에서 재조명받으면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흥행과 발전을 위해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로 적임자다', '롯데구단 구단주 대행을 맡겨야 한다'는 전국의 야구팬들의 댓글이 수천개씩 달릴 정도다.

'송정규 신드롬'은 지난 7월초 롯데자이언츠의 무기력한 경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시작됐다.
공영 KBS1 TV로부터 '1992년 우승을 이끈 당시 단장이자 팬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청을 느닷없이 받아 저녁 9시 <프라임 뉴스>에서 비중있게 다뤄졌다. 인터뷰 후 '롯데 야구의 문제점을 속시원하게 잘 지적했다'는 격려의 글이 쇄도했다. 종합편성TV 채널A과 주간동아, MBC, 부산일보, 서울경제신문, 일요신문 등으로 보도가 이어지면서 친구, 지인들은 물론 공공장소, 길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도 알아보고 엄지척을 보내거나 '사진 한번 같이 찍자'고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유난히도 야구를 좋아했던 송 회장이 '팬'에서 '단장'으로 야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자비로 출판해 화제가 된 '필승 전략 롯데자이언츠 톱 시크릿(TOP SECRET)'이라는 책에서 비롯됐다.

송 전 단장은 선장으로 선박 승선 중에도 중파 일본 라디오 방송과 교도통신 팩스를 통해 일본야구 중계를 들었다고 한다. 미국 항구 기항 땐 미국의 프로야구 경기장까지 가서 직관하기도 하는 열정을 보였다. 열렬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등 국내외 야구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

30대 젊은 나이에 취임한 송정규 롯데자이언츠 전 단장이 야구장에서 선수들과 첫 상견례를 갖고 있다.
30대 젊은 나이에 취임한 송정규 롯데자이언츠 전 단장이 야구장에서 선수들과 첫 상견례를 갖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롯데가 하위권을 전전했다.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도 없던 시절 구단에 전화해서 조언을 많이 했으나 전하려는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는 급기야 직접 출판사를 설립하고 1990년 10월 전설적인 화제를 낳은 340여페이지 분량의 필승 전략 롯데자이언츠 톱 시크릿을 펴내게 된다. 마침 이 책을 읽은 당시 신준호 구단주의 강력한 요청으로 1991년 롯데자이언츠 야구단 단장으로 스카우트 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그의 나이 만 38살로 최연소 야구단 단장이었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야구단 운영 지침서를 자필로 펴내 큰 반향을 일으킨 '필승전락 롯데자이언츠 톱 시크릿' 책자 표지.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야구단 운영 지침서를 자필로 펴내 큰 반향을 일으킨 '필승전락 롯데자이언츠 톱 시크릿' 책자 표지.
그가 단장을 맡은 이후 연속 3년 최하위를 기록했던 롯데자이언츠를 1991년 4위,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것은 물론 2년 연속 100만 관중 돌파에도 성공했다. 롯데자이언츠가 명실공히 한국 제1의 인기구단으로 급부상한 순간이었다.

송 전 단장은 체계적인 야구단 운영과 우승전략에 관해 저술한 필승 전략 롯데자이언츠 톱 스크릿을 통해 야구에 통계학적,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를 세계적으로 맨 처음 주창했다.

급기야 최근 이같은 송 전 단장의 끝없이 이어지는 '야구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를 영화로 제작하고 싶다는 제안을 국내 유명 영화제작사로부터 받아 현재 구체적인 시나리오 작업을 협의하는 단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손정의'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송 전 단장의 한발 앞선 예지력과 혁신적 사고는 주위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올해 최악의 성적으로 부진의 늪에 빠진 롯데자이언츠야구를 살려야 한다는 팬들의 요청에 따라 잇따라 언론 인터뷰에 응해 세이버메트릭스의 중요성과 선수들의 바이오 리듬 체크, 필요할 경우 선수들의 심리치료까지 병행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재차 회자되면서 한국 프로야구계에 새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구리빛 얼굴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송정규 롯데자이언츠야구단 전 단장.
구리빛 얼굴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송정규 롯데자이언츠야구단 전 단장.
롯데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송 전 단장의 최근 인터뷰 후 정작 통째로 변해야 할 롯데자이언츠가 감독과 코칭 스탭진, 단장 정도의 교체에만 그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다른 구단들에서 앞다퉈 세이버메트릭스 이론을 적용한 '데이터 야구'에 나서고 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가 20여년 전 제안한 분석 데이터를 이해하는 젊은 코치나 심리 치료사를 코치로 둬야 한다는 지적은 올들어 미국 프로야구에서 상근 타격코치로 여성을 전격 기용하는 현상까지 벌어져 이를 입증하고 있다.

송 전 단장은 "부산을 흔히 야구의 도시 '야도'라고 부른다"며 "야구가 진취적이고 화끈하고 개방적인 부산 사람들의 기질과 정서에 맞아 떨어지는 운동"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래서 최근 롯데자이언츠의 부진이 부산사람들의 힘을 더욱 빠지게고 하고 사직야구장 주변의 상권이 침체되는 현상까지 일고 있어 당시 우승을 이끄는데 일조한 나를 다시 언론에서 찾아 조명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롯데자이언츠가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프트 뱅크 호크스, 미국의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같은 명문야구단으로 거듭나 부산시민과 야구팬들에게 사랑받는 구단으로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야구전문가보다 더 문제점을 자세히 꼬집어 해법을 내놓고 있는 송 전 단장에게는 '한국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다.

부산 영도에 위치한 한국해양대 교수를 아버지로 두고 어릴 때부터 남달리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송정규 전 롯데자이언츠 단장(앞줄 가운데)이 가족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 영도에 위치한 한국해양대 교수를 아버지로 두고 어릴 때부터 남달리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송정규 전 롯데자이언츠 단장(앞줄 가운데)이 가족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71년 경남고, 1976년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1976년 5월 미국 라스코 쉬핑(Lasco Shipping Co.)에 3등 항해사로 취업한 뒤 같은 해 11월 2등 항해사로, 1978년 1월 1등 항해사로 진급했다. 이어 1980년 5월 미국 스콜피오 쉽 메니저먼트(Scorpio Ship Management Corp.)에서 선장(대한민국 최연소 상선 선장 기록)이 된 후 1987년까지 주로 해상에서 상선 선장으로 근무했다. 1993년부터는 미국 라스코 쉬핑에서 1998년까지 선장으로 근무했다. 지난 2000년 도선사시험에 합격해 일정기간 부산항에서 도선수습을 마친 후인 2001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산항 도선사로 일을 하고 있다. 해운항만분야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송 회장은 상선 선장 뿐 아니라 부산항 도선사회 회장, 한국도선사협회 회장, 부산항만공사 항만위원장, 한국해사법학회 회장 등을 최연소로 지낸 경력의 소유자다. 모교인 한국해양대에서도 국제화물운송론과 해사영어를 강의한 경력이 있는 송 회장의 외국어 구사 능력과 국제적인 감각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해양경제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송 전 단장은 틈 날 때마다 기고를 통해 해운정책과 항만용역업의 경쟁력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선장의 꽃'이라고 불리는 부산항 도선사로 초대형 선박들의 부산항 입출항을 돕고 있는 송정규 전 한국도선사협회 회장(가운데).
'선장의 꽃'이라고 불리는 부산항 도선사로 초대형 선박들의 부산항 입출항을 돕고 있는 송정규 전 한국도선사협회 회장(가운데).
그는 해운·항만·물류산업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비중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도산에 이른 한진해운 물량을 받아 경영을 유지하던 협력업체, 중소해운업체, 연관 물류업체까지 줄줄이 문을 닫아 부산항 일자리가 오히려 격감하는 현상에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초대형 국제 크루즈선박이 부산항에 입항해도 국제 규격을 얻지 못해 생수 하나 제대로 납품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한편 항만배후단지 보세구역에서 소분, 재포장, 유통, 조립업 등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 경제 활성화의 블루오션으로 육성돼야 한다는 게 그의 제안이다.

국내 최대 무역항을 두고 있는 부산의 경우 해양수산기관, 협회, 단체, 업계, 교육, 연구기관 등의 70% 가까이 집적된 곳으로 해양·항만·물류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지역경제, 국가경제 활성화의 도화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분야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현장을 뛰고 있는 송 전 단장같은 전문가가 이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여론도 팽배하다.


이론만 내세우는 교수들보다 거의 평생을 수출입 최전선에서 익힌 글로벌한 시각과 탁월한 외국어 구사능력까지 두루 갖춘 현장 전문가가 조직을 장악하며 창의적인 마인드와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게 되면 대한민국 해운·항만·물류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defrost@fnnews.com 노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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