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101세
쇼와 시대 총리의 마지막 퇴장
냉전을 고리로 한일-미일 밀월관계 형성
소수파벌로 끊임없는 수싸움으로 71~73대 일본 총리 재임
초기엔 다나카 전 총리 그늘 아래 있었으나
대통령급 총리라는 평가
쇼와 시대 총리의 마지막 퇴장
냉전을 고리로 한일-미일 밀월관계 형성
소수파벌로 끊임없는 수싸움으로 71~73대 일본 총리 재임
초기엔 다나카 전 총리 그늘 아래 있었으나
대통령급 총리라는 평가
【도쿄=조은효 특파원】 일본 정치사의 산증인이자 일본 보수의 원류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1982년 11월~1987년 11월 재임)가 29일 타계했다. 향년 101세.
고인은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내걸고 집권 5년간 신자유주의 기조의 '작은 정부' 기조를 표방하며, 국철(현 JR)분할 민영화·일본전신전화공사(NTT)민영화, 원전 정책을 추진했다. 외교안보적으로는 냉전체제를 활용해 일본 외교를 한 단계 격상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군대 보유·개헌 등 우경화 노선을 추구했다.
■냉전시대 자유진영 결속 주장
극우 정치인이면서도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중국과 밀월관계를 형성할 정도로 외교에선 야누스적 면모를 보였다. 1980년대 미국과 극심한 무역마찰을 겪으면서도 냉전이란 외교 지형을 고리로 미·일 동맹을 강화시켰다.
지한파 행보로서 주목되는 몇 가지 사건 중 하나가 총리 취임 직후(1982년 11월) 이듬해 1월 첫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일이다. 당시 일본 내에선 파격적 행보였는데, 일본 총리로서 사상 첫 한국 방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에 앞서 1981년 신군부가 '김대중 사형 판결'을 내렸을 땐 감형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방일 전 양국은 일본의 교과서 기술 및 한·일 경제협력차관 협상 갈등, 신군부와의 관계 설정 등으로 지금과 같이 복잡한 상황이었다. 그는 취임 직후, 긴급 외교현안으로 '한·일 관계 정상화'를 내걸고, 한·일 관계 막후 실력자인 세지마 류조와 권익현 라인을 통해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으로 40억 달러의 경제협력 차관 협상이 마무리됐는데, "한국이 번영해야 북한이 남침해 공산주의 세력이 확장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명분을 강조했다고 한다.
실제 전두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나카소네 총리는 "한국과 일본은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미국과 함께 결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유진영의 한 축으로서 한·일 관계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술자리에서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한국말로 열창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이 일에 대해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며 두고두고 회고하기도 했다.
재임 중인 1985년 '우익 본능'에 따라 일본 총리로서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가 한국·중국의 반발을 산 뒤 중단한 일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선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함께 한일·일한 협력위원회의 공동 회장을 맡으며,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소통의 파이프 역할을 했다. 생전에 요미우리 신문과 서면 인터뷰에선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 인식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판단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구했던) 무라야마 담화를 따라 성의 있는 표현을 시대의 흐름 속에 담아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소수파벌에서 대통령급 총리로
일본의 보수 정치인으로서 고인의 정치 인생은 '수 싸움'의 연속이었다.
1918년 도쿄 인근 군마현 출신으로 도쿄대 졸업 후 옛 내무성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종전 직후인 1947년 28세 때 중의원에 처음 당선된 이후 내리 20선을 달렸다. 1966년 나카소네파를 결성, 소수 파벌로서 일본 정계의 '풍향계'로 불릴 정도로 탁월한 정치감각으로 세를 불렸고, 마침내 1982년 자민당 주류인 다나카파의 강력한 지원 아래 제71대 일본 총리에 올랐다. 총리 취임 초기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영향력 밑에 있다고 해서 두 사람의 이름을 이어 붙인 '다나카소네 내각'이란 별명이 불을 정도로 기반이 취약했으나, 이른바 록히드 사건을 기점으로 다나카 전 총리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대통령급 총리'로서 입지를 다져갔다. 그로 인해 아베 내각, 사토 내각, 요시다 내각에 이어 전후 4번째 장기정권을 이끌었다. 타계 직전까지 공익재단법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세계평화연구소' 소장과 초당파 국회의원 모임인 '신헌법제정의원동맹' 회장을 맡을 정도로 일본 보수 정치의 후견자 역할을 해왔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