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냉전 고리로 한일관계 정상화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반발 사기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반발 사기도
고인은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내걸고 집권 5년간 신자유주의 기조의 '작은 정부' 기조를 표방하며, 국철(현 JR) 분할 민영화·일본전신전화공사(NTT) 민영화, 원전 정책을 추진했다. 외교안보적으로는 냉전체제를 활용해 일본 외교를 한 단계 격상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군대 보유·개헌 등 우경화 노선을 추구했다.
'냉전체제와 자유진영의 결속'은 나카소네 전 총리의 외교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1980년대 미국과 극심한 무역마찰을 겪으면서도 냉전이란 외교지형을 고리로 미·일 동맹을 강화했다.
재임 기간 한국과도 '반공과 냉전'을 고리로 우호관계를 형성했다. 일본 보수정치의 원류로서 '우경화 기조'와 일견 논리적으로 결을 달리했으나, 현실정치에선 전후 최고의 '지한파' 정치인이었다.
지한파 행보로 주목되는 몇 가지 사건 중 하나가 총리 취임 직후(1982년 11월) 이듬해 1월 첫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일이다. 당시 일본 내에선 파격적 행보였는데, 일본 총리로서 사상 첫 한국 방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당시 한·일은 일본의 교과서 기술 및 한·일 경제협력차관 협상 갈등, 신군부와의 관계 설정 등으로 복잡·냉랭한 상황이었다. 고인은 취임 직후 외교 현안으로 '한·일 관계 정상화'를 내걸고 한·일 관계 막후 실력자인 세지마 류조와 권익현 라인을 통해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 정상회담으로 양국 간 40억달러의 경제협력차관 협상이 마무리됐는데, "한국이 번영해야 북한이 남침해 공산주의 세력이 확장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명분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임 중인 1985년 '우익 본능'에 따라 일본 총리로서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가 한국·중국의 반발을 산 뒤 중단한 일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선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함께 한일·일한 협력위원회의 공동회장을 맡으며,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소통의 파이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생전에 요미우리 신문과 서면 인터뷰에선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인식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판단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구했던) 무라야마 담화를 따라 성의 있는 표현을 시대의 흐름 속에 담아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