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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 쉬웠다는 올해 수능 국어, 기자가 직접 풀어보니 '70점'

긴 지문·어려운 개념 등 80분 내 45문항 풀기에도 벅차 "변별 위한 시험…교육 목적보다 어렵게 만 내려고 해" 과한 난이도, 문제 풀이·사교육 의존 유발 가능성 높아 정부 정시확대 예고…"공교육 역행, 현 수능개선 필요"

작년보다 쉬웠다는 올해 수능 국어, 기자가 직접 풀어보니 '70점'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통지표 배부일인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능 성적표를 확인하고 있다. 2019.12.04.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구무서 기자 = 교육부가 'SKY대학'을 비롯해 학생과 학부모 선호도가 높은 서울 소재 16개 대학에 대해 2023학년도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 정시전형 선발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권고한 뒤 수능 체제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수능 시험문제 수준과 출제 유형 등이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시전형 비율을 40% 이상 확대할 경우 공교육이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무너질 것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전문가들은 지난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평가가 나온 2020학년도 수능 국어영역조차도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변별만을 위해 불필요하게 어려운 문항을 출제하는 것을 지양하고 학습 목적에 맞는 시험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수능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20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한 지난 3일 기자가 직접 수능 국어영역을 풀어본 결과 원점수 기준 70점이 나왔다.

시험은 실제 수능시간 80분을 고려해 퇴근 후인 오후 9시부터 10시20분까지 자택에서 진행했다. 기자가 수능시험지를 본 것은 2007학년도 수능을 치른 2006년 이후 13년만이다. 최신문제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 6월 모의평가와 9월 모의평가도 11월말~12월초에 한 차례씩 풀었다.

◇어려운 난이도·촉박한 시간…시간 내 문제 읽기도 벅차

우선 시험에서는 읽어야 할 지문이 굉장히 많았다. 1~3번부터 긴 지문이 제시됐고, 2번 문항은 그림과 자료까지 함께 보고 답을 찾아야 했다. 문법을 묻는 문항은 개념이 어려워 다 틀렸다.

간신히 시험 초반부를 끝내고 독서영역에 진입하자 더 많은 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1개의 지문에 5개 문항이 연결돼있어 지문을 읽다가 문항을 다시 보는 과정이 반복됐다.

문학영역에서는 소설과 고전시가 등이 흥미로웠지만 시간의 압박으로 인해 읽어내기에 급급했다.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에 등장한 혹부리 영감의 생김새와 아버지의 슬픔을 상상하거나 공감할 틈새가 없었다. 답에 필요한 지문만 선별하느라 온 정신이 팔렸다.

이어진 비문학 영역은 더 많은 글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37~42번 문항이 고난도였다는 배경지식이 있어서 이 부분만 집중해 천천히 정독했다. 이번 수능에서 가장 어려웠다는 40번은 마지막 보기를 계산식에 도입해 수치가 맞는지 여부만 파악해 답을 찍었다. 37번과 39번은 정확한 정답을 고르지 못해 정답이 아닌 답을 걸러낸 뒤 남아있는 문항을 선택했다.

42번까지 풀고 난 후 시간은 5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자 초조함이 밀려오면서 지문과 문항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44번과 45번을 틀렸다.

이번 시험에서 기자는 6번, 12번, 13번, 14번, 15번, 25번, 26번, 28번, 29번, 36번, 41번, 44번, 45번을 틀렸다. 틀린문항의 배점은 총 30점이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국어 원점수 70점은 표준점수 110점, 백분위 65, 4등급으로 추정된다. 이번 수능에서 어렵게 출제돼 표준점수 최고점이 높은 수학 나형을 1등급 이상 확보하지 않는 한 서울 소재 주요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점수다.

국어 70점으로 서울 소재 주요대학 진학 가능성에 대해 묻자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도 5일 "가치가 없는 질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변별만을 위한 시험은 비교육적…대입제도에서 개선돼야

읽기와 쓰기를 생업으로 하는 기자가 풀기에도 쉽지 않은 국어영역 시험이 이렇듯 어렵게 출제된 이유는 변별 때문이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문제를 소화해야 하는 만큼 정독보다는 속독이 우선시 됐다.

시험을 본 이후 문제를 천천히 다시 풀어본 결과 6번과 26번, 28번, 29번, 41번, 44번, 45번은 정답을 찾았다.

박상규 전국국어교사모임 사무총장은 "국어교육 목적에 따라 그 능력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수능은 변별이 제1의 목적이 되다 보니 어렵게 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독서영역이 불필요하게 높은 난이도로 출제된다고 강조했다.

국어교사모임에 따르면 2016학년도 수능에서 독서영역은 4개 제시문 총 5672자가 제시됐으며 1개 제시문당 길이는 1147~1589자였다. 2017학년도에서부터는 3개 제시문으로 줄었으나 제시문 당 길이는 평균 2000자에 육박했다. 2019학년도 수능에서는 3개 제시문에서 공백을 포함해 총 6232 글자가 시험지에 담겼다.

1개의 지문으로 4~5개 문항이 출제되다보니 각 제시문에 등장하는 개념이 많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나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담당하는 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비문학 독해에서 특히 과학과 경제 관련 지문들은 국어영역이라고 하기에는 난이도가 과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소화하기 버거운 지문과 문항들이 나오면서 결국 학생들은 문제풀이식 교육과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지난달 28일 서울 소재 16개 대학에 대해 2023학년도까지 수능 위주 정시전형 선발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권고한다고 밝혔다. 공교육만으로 대비하기 힘든 현재 수준의 수능은 그대로 둔 채 정시선발 비율을 늘리는 것으로 공정성이 확보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 정책자문위원장을 지냈던 강원대 일반사회교육학과 최현섭 명예교수는 "정시와 수시 다툼을 떠나 수능을 지금 상태로 놔둔 상태에서 정시를 늘리는 것이 과연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느냐가 중요한 초점"이라며 "지금의 수능은 개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원 소장도 "면접 공정성 강화 등 시험을 어렵게 출제하지 않더라도 변별을 할 방법은 충분히 있다"며 "수능에 논·서술형 문제 출제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 계속 나오는 것은 오지선다형 시험의 한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는 의미다. 불필요하게 어려운 시험에서 벗어나 다른 생각을 할 논의를 해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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