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톡]

아베의 '젊은 과학자'정책을 보며

일본은 노벨상 수상 '단골' 국가다. 일본 국적의 과학분야(화학상·물리학상·생리의학상) 수상자만 총 22명이다. 어느 해(2008년)엔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동시에 휩쓴 경우도 있다. 한국의 연구 풍토에서 볼 때 가장 진기해 보이는 건 일개 기업 소속의 '샐러리맨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거머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진기한 건 노벨상을 탔다고 해서,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을 쥐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버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초연히, 그냥 하던대로 일한다. 단백질 등 고분자 물질의 질량을 순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노벨 화학상(2002년)을 탄 다나카 고이치(60)는 수상 당시 시마즈제작소 주임이었고, 지금도 시마즈제작소에서 일한다. 박사도 교수도 아닌 학부 출신의 그는 '생애 최고의 실패'라는 에세이집을 통해 샐러리맨 연구자로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 바 있다.

올해 화학상 수상자인 요시노 아키라 아세히카세이 명예 펠로우 역시 샐러리맨 연구자다. 그가 리튬이온배터리 연구에 뛰어든 건 1981년이었다. 돌이켜보면 20~30년을 내다본 연구였다. 연구자의 '끈기'와 회사의 '기다림'이 맞물린 결과였다. 기업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건 대학을 막론하고, 일본의 연구 풍토가 그만큼 탄탄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내로라하는 대기업 연구소조차 돈 되는 단기 연구에 치중하는 한국의 현실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다.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연구개발(R&D) 비중은 4.55%로 세계 1위로, 절대 액수로도 세계 5위이나 상당수 위험회피 연구들이다. 게다가 5년에 한 번 정권따라 '녹색성장이냐, 탈원전이냐' 뒤바뀌는 연구투자로는 20~30년을 내다보는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지난 5일 일본에선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정책이 발표됐다.

아베 정권이 26조엔(약 284조원)이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마련하면서 여기에 '젊은 연구자'를 위한 500억엔(약 5485억원) 규모의 기금 신설안을 포함시킨 것이다. 40세 미만의 젊은 연구자 '700명'을 뽑아 연평균 '700만엔'에서 최대 1000만엔까지 7년을 원칙으로 최장 10년간 지급하는 기술입국을 위한 장기프로젝트다. 이른바 '700·700·7' 사업이다.

지난달 중순 아베 총리를 만난 요시노 아키라가 "젊은 연구자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자, 아베 총리가 즉석에서 젊은 연구자를 위한 예산 마련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공계를 졸업하고도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기간제·비정규직 연구자 신분으로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일본의 신입사원 평균 연봉이 약 240만엔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가 젊은 연구자들을 기업의 중간간부급 이상으로 대우해주겠다는 것이다. 주로 '대담한 발상'에 기초한 연구개발이 타깃이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포퓰리즘적 용돈정책이나 구사하는 한국과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연구자 1명에게 10년이란 시간을 통 크게 투자하겠다는 것 자체가 과감하다. 700명 중 5%, 35명, 아니 1%인 7명만 성공해도 이 투자는 대성공이다.
기다림의 결과물은 일본의 핵심 소재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며 한·일 간 기술격차를 더 키워놓을 것이다. 일본의 젊은 과학자들을 위한 정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는 우리도 기다릴 수 있지 않은가.' 너무 급했고, 지금도 단기 성과에 급급한 한국의 연구 풍토도 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나 싶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