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윤중로] 민주주의가 사라진 국회

[윤중로] 민주주의가 사라진 국회
지난달 27일 전체회의가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 앞. 눈물을 글썽이며 의원들에게 '민식이법' 등 어린이 안전법안을 통과시켜 달라는 부모들의 모습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국민의 대리인인 의원들이 상전 노릇하는 이 기막힌 전도된 모습은 이제 정치스캔들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정부의 헛발질도 이에 가세하며 개혁이 실종되고 있다. 지난해 김용균씨 사망으로 개정된 '김용균법'에 정작 '김용균'이 빠진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해 산업안전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시행령에서 가중처벌 조항이 슬그머니 완화됐다.

국회, 정부 가릴 것 없이 말과 행동이 따로 논다. 의원들의 철저한 이해관계가 법안의 운명을 결정한다. 저잣거리의 흥정 대상으로 전락했다. 정부의 법안도 각종 이해단체 로비에 휘둘리기 일쑤다.

무엇보다 김용균법 사례는 청와대의 개혁 실천의지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다. 적폐 청산에 치우친 사회개혁이 동력을 잃는 것은 말과 행동의 다름에서 비롯된다. 국정과제를 뒷받침하는 정책의 완성도와 정교함이 기대 이하다. 문제는 청와대를 움직이는 대통령 측근들 및 민주당의 민주화 정통성에 대한 과잉대표에 있다. 사실 이들은 민주화 세대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전체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것처럼 과대포장돼 있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통칭 '86' 세대라 칭하는 이들은 과거 민주화투쟁을 거쳐 제도권에 진입해 국가운영의 중추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몸만 커졌지 정신은 그대로다. 과거 80년대 운동권은 PD(민중민주)와 NL(민족해방)로 양분돼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PD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수를 점했던 NL 계열은 감상적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통일운동에 매진했고, 사회계급 구조에 천착한 PD는 노동운동에 집중했다. 정치노선에 대한 논쟁이 치열해야 함에도 당시 NL 계열은 이를 외면했다. 이론적 토대가 취약함은 물론 운동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낳았다. 운동권 지도부의 권력의지는 상대적으로 강해 현실정치 영역으로 많은 인재들이 전입신고를 마쳤다. 그렇지만 집권 후에도 취약한 이론적 토대와 감성적 투쟁의지는 두고두고 이들의 약한 고리로 작용했다. 현실을 알아야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현실에 투항한 자신들을 정당화했다.

자신들의 계급적 기반을 상실하면서 그들의 생명선인 진보성에 균열이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김용균법이 누더기가 된 것도 이런 연유다. 86세대 퇴진론이 불거진 이유는 자신들의 신념과 이상에 대한 조용한 배반 때문이다. 결국 정치는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다. 철저하게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행위의 몸부림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민주화 세력만 과잉대표된 것은 아니다. 입법권력도 행정부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정부 시행령 탈취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 여야 협상 테이블에 오른 국회법 개정안은 해당 기관의 장이 3개월 내 처리 결과를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했다. 입법부의 과잉권력화는 대통령제의 효율성을 가로막는다.


미국 헌법 기초자 중 한 명인 제임스 매디슨은 "대의제 민주주의는 가진 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정치적 장치"라고 털어놨다. 민주주의가 차악으로 선택된 제도라는 의미다.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권력쟁탈에만 열을 올리는 국회가 개혁대상 1호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