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조선의 것으로 조선에 맞는 것을 만들면 됩니다."
관노로 태어났지만 뛰어난 과학 지식과 타고난 손재주를 지녔던 장영실(최민식 분). 세종(한석규 분)의 눈에 띄게 된 그는 "조선의 것으로 조선에 맞는 것을 만들면 된다"는 말로 신임을 얻기 시작한다. 세종은 명나라 지배를 벗어난 독립적인 천문 사업을 시작하고, 장영실은 그런 세종과 뜻을 함께 하며 조선의 시간과 조선에 맞는 절기를 찾고자 각종 천문의기를 발명해낸다.
하지만 명나라가 이 사실을 알고 노여워 하게 되고, 세종의 오랜 염원이었던 천문 사업과 그 뜻을 함께 이뤘던 벗 장영실을 동시에 잃을 위기에 처한다. 명나라 사신이 내정을 간섭하고 대신들마저 사신의 눈치를 보기 급급한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세종이 타는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 안여를 제작한 장영실은 사건의 책임자로 내몰리게 된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 / 이하 '천문')는 장영실과 세종의 위대한 업적을 넘어 두 사람이 20년간 어떻게 우정과 신의(信倚)를 이어왔는지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다. 안여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한 세종의 모습으로 강렬한 시작을 알린 후 안여 사고 4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20년 전 세종 4년에 두 사람이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액자식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언론시사회에서 허진호 감독과 최민식이 "세종과 장영실은 서로를 알아준 관계"라고 말했듯, 극 중 세종과 장영실은 조선만의 하늘과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천문의기들을 만들어내는 데 뜻을 함께 했다. 조선 시대 경제 발전에 농업이 가장 중요했던 만큼, 날씨와 계절의 정보를 정확히 알아야 했다. 그로 인해 명나라의 절기를 따르는 것이 아닌, 조선만의 과학 기구를 발명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일찍이 어진 군주로서, 모든 백성이 읽고 쓸 수 있는 문자를 꿈꿔온 임금으로 알려진 세종은 영화에서도 '재주 있는 자에게 관직을 내려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장영실에게 관직을 내리는 것은 조선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신하들과 대립하게 된다. 세종은 재능이 있는 장영실을 알아보고 그를 곁에 두며 함께 강한 조선을 꿈꿨다. 장영실은 신분을 넘어 자신을 인정해주는 세종의, 백성들에 대한 진심을 그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충신으로 그려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 '덕혜옹주'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은 '천문'에서도 특기인 심도있고 깊이 있는 관계 묘사로 몰입도를 높였다. 별이 보고 싶다는 세종을 위해 창호지에 별을 새기는 장영실의 모습, 근정전에 누워 세종과 장영실이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서로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는 두 사람의 눈빛을 담아낸 장면 등은 영화에서 인상적인 순간들이다. 이는 감성적이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풀여낸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세종과 장영실이 함께 발명해낸 간의와 간의대 등 천문 관측기구와 물시계인 자격루 등을 최대한 역사에 가깝게 고증해 만든 노력도 엿보인다.
최민식과 한석규,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주는 두 배우들의 열연은 더할나위 없다. 이들은 각자 장영실로, 그리고 세종 그 자체로 각인된다. 비상한 천재이면서도 천진하고 순수한 장영실의 모습을 보여준 최민식과 인자한 성군이면서도 왕으로서 묵직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한석규의 연기 내공이 새삼 실감된다.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전개와 감정의 고조가 예상되는 지점이 있지만 두 배우들의 연기 자체로 상쇄되고 대사와 장면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의 여운이 깊이 남는다. 노장의 투혼과 품격을 보여준 신구의 열연 또한 강렬하고, 여기에 김흥파 허준호 김태우 등 배우들의 존재감이 무게감을 더한다.
'천문'은 허진호 감독의 '그토록 세종이 곁에 뒀던 장영실은 왜 역사에서 사라졌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영화다. '안여 만드는 것을 감독했는데 튼튼하지 못해 부러지고 허물어졌으므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했다'는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기록에 따르면 장영실은 곤장 80대형을 맞았고, 이후 역사의 기록에서 흔적을 감추게 된다. '천문'은 당시 숨겨진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매우 드라마틱하게 풀어냈고,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이지만 흥미와 진한 감동을 더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세종의 벗이었던 장영실이 역사에서 왜 사라졌을지 궁금증으로 여운이 더욱 짙게 남는다. 오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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