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민 위한 복지라면서…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다고요?[여전한 복지 사각지대(中)]

오은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7 18:03

수정 2019.12.17 18:03

일가족 사망 비극 일어날 때마다
정부 "복지제도 신청 안해" 되풀이
손 직접 내밀라는 '신청주의' 한계
어렵게 신청해도 한해 16% 탈락
복잡한 기준이 또다른 장벽으로
#. 지난달 2일 서울 성북구의 다세대주택에서 숨진채 발견된 네 모녀가 받은 지원금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었던 이들은 지난 7월부터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는 등 급작스럽게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 지원 제도인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신청하지 않았다. 긴급복지는 당사자가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다. 주민센터 담당자가 제안한 생활고 등에 대한 상담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 위한 복지라면서…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다고요?[여전한 복지 사각지대(中)]


■'복잡해서·몰라서'..제도개선 필요

17일 시민·복지단체 등에 따르면 현행 우리나라의 복지 시스템은 '신청주의'에 기반한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알아보고 신청해야 복지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조건 등으로 복지 대상자들이 신청에 어려움을 호소할뿐 아니라 관련 제도를 모르는 대상자도 상당수다.

복지 제도와 관련된 소극적인 행정은 성북구 네모녀와 같은 사례가 생길 때마다 비난받아 왔다. 지난 8월 굶주림 끝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 관악구 모자 추모제에서 시민단체들은 현행 복지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신청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있었는데 신청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데 이는 가난한 이들을 완전히 기만하는 말"이라며 "복잡하고 까다로운 선정기준은 복지 수요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에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고, 기초생활수급과정을 간소화하고 임의로 서류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신청을 한다고 하더라도 복지 항목이 지나치게 세분화되고 조건도 까다로운 탓에 반려되는 대상자들도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8 한국복지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생계가 어려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신청을 한 가구 가운데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를 모두 받은 가구는 전체의 5.47%에 불과했다. 78.95%는 4개 급여 중 일부만 받았고 15.58%는 탈락해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신청주의=아는 사람만 받는 것"

신청주의는 결국 '아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복지'라는 문제점을 만든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돌봄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한번에 안내받고 신청할 수 있는 '복지멤버십'을 2021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존 제도 개선과 재정확대를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꼽는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빈곤은 모두에게 똑같이 힘들기 때문에 기술적인 접근으로 먼저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정책 효용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20년간 문제시 되고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손보고, 절대적으로 부족한 재정을 확대해 실제로 지원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청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정부가 내놓은 복지위기가구 발굴·지원책도 공무원 확충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은 "신청주의는 복지를 선별해서 최소로 줘야 한다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런 시각은 현장에서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이 너무 적은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인력확충을 통한 복지제도 전달체계의 정상화가 시급한 상황"고 덧붙였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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