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시베리아의 힘'과 한국의 에너지 안보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8 17:04

수정 2019.12.18 17:04

中·러 PNG 에너지 동맹
美, 日·호주와 LNG 협력
"한국은 중간에 붕떠있어"
[구본영 칼럼]'시베리아의 힘'과 한국의 에너지 안보
이달 초 중국과 러시아 간 '에너지 동맹'의 서막이 열렸다. 양국을 잇는 대규모 천연가스 파이프 '시베리아의 힘'이 개통되면서다. 시베리아 지역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장장 3000여㎞의 가스관을 타고 중국 동북지역으로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다.

미국이 아연 긴장하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갈등에 이어 새 전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중·러) 두 강국이 협력을 강화할 물리적 유대"라고 평가한 그대로다.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대지각변동이 본격화했다는 뜻이다.

진앙의 중심엔 천연가스가 있다. 셰일혁명 성공으로 미국이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으로 부상하면서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나 에너지가 부족한 중국은 미국산 LNG 수입량을 꾸준히 늘려왔다. 그러나 지난해 관세전쟁을 계기로 수입을 중단했다. 러시아의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중국은 그간 대륙국의 이점을 살려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등으로부터 PNG를 들여오면서 호주, 카타르, 인도네시아, 미국 등으로부터 LNG도 수입해 왔다. 반면 그간 천연가스 최대 수입국이던 일본은 중동과 호주·미국·러시아 등의 LNG에 의존해 왔다. 이제 '시베리아의 힘' 개통으로 중국은 LNG 수입 비중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반면 미국은 일본·대만·한국 등을 상대로 LNG 판로를 넓혀야 할 처지다.

그래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일·호(濠) 동맹' 대 '중·러 동맹'이라는 에너지 패권 경쟁이 불붙을 참이다. 크게 보아 '해양국 대 대륙국'이란 대치구도다. 내년에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입국이 될 중국 입장에선 러시아와 손잡는 게 당연하다. 태평양을 배로 건너야 하는 미국산 LNG에 비해 러시아산 PNG가 가격경쟁력이 앞서서다.

우리가 더욱 심각히 여겨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중·러가 하부구조인 경제를 토대로 정치·군사 연대도 강화 중이란 사실이다. 중·러는 올해 12만8000여명이 참여하는 연합군사훈련을 했다. 북·중·러 삼각동맹 부활 조짐도 있다. 얼마 전 미국이 소집한 유엔 안보리에서 중·러는 새 도발에 나서려는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에 반대했다.

그런데도 한·미·일 공조는 외려 느슨해지고 있어서 문제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 특히 중·러 연대에 대응해 일본·호주·인도를 한데 묶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참여를 미적거리면서 한국은 "중간에 떠 있는 상황"(박정진 일본 쓰다주쿠대 교수)에 처했다. 최근 러시아·중국 군용기들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집 드나들 듯하는 현상도 이런 '오리알 신세'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같은 에너지 각축전의 함의를 정확히 읽고 우리의 좌표를 설정할 때다. 문재인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전제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청사진을 제시했었다. 철도와 에너지 공동체를 만들려는 구상이다. 탈원전으로 2020년대부터 급증할 천연가스 수요의 일부를 러시아·북한을 경유하는 PNG로 충당한다는 계획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이는 요원하다 못해 공허하게 들린다.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는 보이지 않고, 북·중·러 동맹이 재구축되고 있는 탓이다. 우리의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연결고리를 적극 모색하는 게 현실적 대안일 듯싶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의 LNG 인프라 구축에 참여하는 방안 등이 '에너지 안보'를 지킬 첩경이다. 탈원전 드라이브도 무모해 보인다.
북한이 핵을 확실히 포기할 때까지라도 LNG 수요 폭증을 부를 과속 탈원전정책도 지양해야 할 것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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