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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괴물이 돼가는 ‘전기요금 논란’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26 17:26

수정 2019.12.26 17:26

[여의도에서]괴물이 돼가는 ‘전기요금 논란’
전기요금 문제를 꺼내면 모순에 빠진다. 조정 권한을 가진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겠다는데 소비자는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런데도 꺼림칙하다. 현재의 전기요금 갈등은 수차례 변이를 거쳐 정치화됐다. 급격한 탈원전 에너지전환의 후유증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꼴이다. 정치와 정책이 만든 '괴물'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전기요금을 괴물로 만들었나. 첫째, 정부다.
'탈원전=탈석탄·미세먼지 저감=전기요금 인상'이라는 프레임을 만든 당사자다. 에너지전환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속도와 방식이 급진적이지 않았나. 정교하게 정책을 추진해야 했으나, 소통 없는 일방통행이다. ①전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백운규는 국회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없을 거란 건 삼척동자도 안다"고 장담했다(2017년 7월). 결국 전기요금 인상은 삼척동자가 아니고선 말도 못 꺼내게 됐다. ②후임 장관 성윤모는 "에너지전환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2022년까지 미미하다. 2030년까지 10.9% 수준"이라고 했다. 기존 입장을 재확인할 뿐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③이후 성윤모는 "전기요금 특례할인 제도 폐지 논의는 적절치 않다"고 한전 주장을 일축했다. 성윤모도 삼척동자가 아니다.

둘째, 한국전력이다. 전기요금에 관한 한전 사장 김종갑의 말을 좇다보면 길을 잃는다. ①취임(2018년 4월) 초, 김종갑은 "원가 이하로 판 전기가 4조7000억원이다. 한전 이익중립으로 산업용 경부하요금 등 불합리한 요금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②여름 주택용 누진제 완화로 할인액 2800억원을 한전이 떠안고,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정책보조금이 1조원 이상으로 늘자 '이익 중립'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이익 중립'은 본질을 왜곡한다. ③김종갑 임기 2년차, 한전은 원료비 상승, 원전가동률 하락, 각종 보조금 급증에 최악의 적자(상반기 9285억원)가 났다. 공기업 한전의 적자, 부채(124조원)는 결국 국민 부담이다.

셋째, 사용자다. 소비자는 이기적이다. 자신이 받고 있는 혜택(할인)을 놓지 않으려 한다. 값싼 산업용 경부하요금을 독점(전체의 1.5%가 심야전력 63% 사용)하는 소수 대기업, 값싼 농업용 전기로 온열설비를 대체한 대형 농장, '개문 냉·온 영업'하는 일반용 사용자의 전기요금은 합리적인가. 전기를 덜 쓴다는 이유로 고수익 가구에도 공제할인(4000원 한도 일괄할인)을 지속하는 게 합당한가. '보편적 복지'라는 명분도 불합리하다면 재고해야 한다.

한전은 오는 30일 이사회에서 12월말 만료되는 10여종의 전기요금 특례할인(일몰) 폐지를 추진한다. "재무개선과 관련없다"고 하나, 특례할인액만 1조원이 넘으니 한전의 우회적인 이익 확보 방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요금 조정 결정권을 가진 산업부는 특례할인 폐지에 반대다.

오는 2030년까지 전기요금 인상폭을 10% 선에서 억지한다는 게 정부 계산이다. 신규 원전 백지화, 노후 석탄발전 가동 중단 등을 고려한 민간 전망치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낮은 인상폭이다. 정부 계획대로 된다면 잘한 정책이 맞다. 그러나 한전의 재정건전성, 국민 공감의 에너지전환이 같이 가야 한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지금처럼 불황 때, 탈원전 찬반의 골이 깊을 때 전기요금 인상은 소비자 저항력을 높인다.
왜곡을 알면서도 합리화하지 못하는 이유다. 괴물을 더 키워선 안된다.
한전은 요금을 올려 이익을 회복하려는 계산 이상으로 관료화된 거대 조직의 방만경영 쇄신을, 정부는 합리적 전기요금 조정(인상)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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