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뉴스1) 유재규 기자 = 역대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았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진실이 세상에 공개 되자 온 국민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2019년 하반기는 뜨거웠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지난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개봉돼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이름이 33년 만에 바뀐 명칭이다.
이춘재 사건은 1986~1991년 경기 화성군(現 화성시) 진안리, 횡계리, 병점리(現 진안동, 횡계동, 병점동) 일대에서 발생한 '부녀자 성폭행 살인사건'이다.
이춘재(56)가 저지른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그동안 모방범죄로 분류돼 왔던 8차 사건까지 본인의 소행이라고 자백하자 온 국민은 또한번 충격에 빠졌다.
이춘재 사건에서 8차 사건은 경찰의 주요 수사로 부각되지 않았다가 이춘재의 자백으로 경찰이 재수사에 들어갔고 여기에 8차 사건의 진범으로 붙잡혀 20년 간 옥살이를 한 윤모씨(52)도 재심까지 청구했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이 밝혀진 지 3개월이 넘은 현 시점에서 온 국민은 수사기관에 올바른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수사기관도 의혹을 남기지 않기 위해 수사를 원점으로 돌려 모든 기록을 낱낱이 검토 중이다.
◇DNA로 붙잡은 연쇄살인범 '이춘재'는 누구인가
이 사건 수사본부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9월18일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이춘재를 지목했다.
경찰의 이같은 공식 발표가 있었던 배경에는 경기남부청 미제사건 수사팀이 지난 7월15일 이 사건의 일부 피해자 유류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DNA를 감정의뢰했고 그 결과, 3가지가 일치한다는 국과수의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경찰은 5·7·9차 사건의 피해여성 유류품에서 나온 DNA와 50대 남성의 DNA가 일치한다는 국과수 감정 결과를 토대로 25년째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춘재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하고 수사를 벌였다.
이춘재는 지난 1994년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가 최근 이 사건으로 수원구치소로 이감조치 됐다.
이춘재는 1991년 1월부터 직장 문제로 청주를 자주 오갔다. 이후 6개월 뒤 건설회사에서 굴삭기 기사로 취직한 이춘재는 직장 동료와 결혼을 하게 되고 2년 뒤인 1993년 4월 청주로 주소지를 옮긴다.
그러다 이듬해, 이춘재는 1994년 1월 충북 청주 자신의 집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둔기로 수차례 때려 살해했고 이로 인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아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해왔다.
총 10건의 이춘재 사건 가운데 이춘재의 DNA와 일치하는 사건은 3·4·5·7·9차, 증거물이 없는 사건은 1·6차, 미검출은 2·8·10차로 최종 확인됐다.
이춘재가 범행을 시인했지만 그가 왜 연쇄살인을 저질렀는지, 추가로 저질렀다는 타지역 살인사건과 30여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사건의 범행 경위와 동기가 뭔지 등에 동기에 대해서 경찰은 "시기가 되면 발표할 것"이라는 답변만 내놨다.
◇추가살인건 자백까지…이춘재 입을 열게 한 '프로파일러' 활약
이춘재가 처음으로 이 사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후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는 취지로 줄곧 범행을 부인해 오다 경찰의 끈질긴 대면조사 끝에 지난 10월1일 결국 범행을 모두 시인했다.
이 과정에서 '스모킹 건'으로 꼽힌 DNA 감정결과가 무려 5건이나 일치한다는 점과 더불어, 전국의 유능한 범죄심리분석관 프로파일러 9명과 법 최면가 2명의 큰 역할도 있었다.
이춘재 사건에 투입된 프로파일러들 가운데는 지난 2009년 10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강호순의 자백을 받아낸 공은경 경위(40)도 포함됐다.
경찰은 프로파일러와 함께 이춘재와의 대면조사를 위해 부산교도소로 지속적으로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라포르'(Rapport, 상호신뢰관계)가 이춘재의 입을 열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고 전했다.
총 10차례 연쇄살인사건과 청주 처제 살인사건을 제외하고 이춘재는 추가적으로 저지른 4건의 살인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했다.
이춘재가 밝힌 추가 범행 4건은 Δ1987년 12월 수원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 Δ1989년 7월 화성에서 있었던 초등생 실종사건 Δ1991년 1월 청주 복대동 여고생 살인사건 Δ1991년 3월 청주 남주동 주부 살인사건 등이다.
'수원 여고생 사건'은 1987년 12월24일 A양(당시 19)이 어머니와 다투고 외출한 뒤 실종됐다가 1988년 1월 4일 수원 화서역 근처에서 속옷으로 재갈이 물리고 손이 결박된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은 1989년 7월18일 화성군 태안읍에 살던 김모양(당시 9세)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실종된 사건이다. 5개월 뒤인 12월 김양이 실종 당시 입고 있던 치마와 책가방이 화성군 태안읍 병점5리에서 발견됐지만 김양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청주 복대동 여고생 살인사건'은 1991년 1월27일 청주 복대동 택지 조성공사장에서 박모양(당시 18)이 성폭행 당한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박양은 속옷이 입에 물려 있었고, 양손도 뒤로 결박돼 있었다.
'청주 남주동 주부 살인사건'은 1991년 3월7일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의 한 셋방에서 주부 김모씨(당시 27세)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당시 김씨는 양손이 결박되고 입에 스타킹이 물려 있었다. 가슴에서는 흉기에 찔린 상처도 있었다.
경찰은 이춘재가 당시 사건들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범행지역, 장소, 특이점 등도 그림에 담은 만큼 유의미한 진술로 판단했다는게 경찰의 설명했다.
때문에 경찰은 그동안 유력 용의자로만 대했던 이춘재를 지난 10월14일 피의자로 전환, 정식입건 했다.
◇8차 사건 재조명…'부실수사' '강압수사' 꼬리표 붙은 수사기관
지난 10월4일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했을 때 온 국민에게 큰 관심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이 사건이 '모방범죄'로 분류돼 왔기 때문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7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무차별하게 살해한 총 10차례 살인 사건 중 논이나 야산에서 이뤄졌던 외부 범행장소와 다르게 유일하게 실내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양(당시 13세)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된 사건이다.
이때 사건현장에서 체모 8점이 발견됐고 경찰은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해 조사를 벌였다. 이후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다가 20년형으로 감형돼 2009년 청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진범을 잡고 사건까지 종결 시켰는데 이 사건으로 검거돼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윤씨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던 윤씨가 당시 수사관들이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 가기 위해 강압수사를 했고, 그에 따라 자신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기록에는 농기구센터 수리공이었던 윤씨가 사귀던 애인이 떠나 버린 뒤 여성에 대한 원한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돼있다.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히고 난 이후부터 경찰은 논란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윤씨를 총 4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윤씨는 자신에게 가혹행위를 저지른 인물은 최모, 장모 형사라고 또렷이 기억했으며 특히 3일 동안 잠 안재우기, 쪼그려 뛰기 등 갖은 고문을 하면서 허위자백을 이끌어 냈다고 주장했다.
논란은 8차 사건뿐만 아니었다.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 발생 5개월 뒤, 당시 수사관들과 마을주민이 피해자 김양의 책과방, 치마 등 유류품과 일부 유골을 발견하고도 사체를 은닉해 이를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했다.
경기남부청은 이 사건을 재수사 하는 과정에서 당시 지역주민들로부터 '1989년 초겨울 야간수색 중 줄넘기 줄에 결박된 양손 뼈를 당시 형사계장과 함께 발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뒷받침 해주듯 이춘재 역시 '이 사건의 피해자를 범행당시, 양 손목을 줄넘기 줄로 결박했다'고 자백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에 경찰은 당시 수사관들의 강압수사와 부실수사가 있음을 인정하며 8차 사건을 담당했던 당시 형사계장 등 7명과 검사 1명을 직권남용 체포 및 감금, 폭행 및 가혹행위 등의 혐의로 지난 17일 정식 입건했다.
특히 수원지검 소속 전직 검사는 윤씨의 임의동행부터 구속영장 발부 전까지, 아무런 법적 근거나 절차 없이 75시간 동안 감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을 담당했던 당시 수사관 2명에 대해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해 입건했는데 2명 중 1명은 이 사건과 8차 사건 모두 관련돼 있는 형사계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8차 사건 두고 檢vs署 대립…치닫는 검·경 수사관 조정 갈등
"지금이라도 자백한 이춘재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긴 윤씨는 재심 조력가 박준영 변호사와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 이주희 변호사의 도움으로 지난 11월13일 수원지법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재심청구는 '원판결의 법원이 관할한다'는 형사소송법 제 423조에 따라 윤씨에 대한 원판결이 내려진 수원지법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윤씨의 재심청구 사유는 형사법 제 420조 Δ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제 5호) Δ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제 1·7호) 등에 따라 이뤄졌다.
8차 사건에 대해 경찰로부터 당시 수사기록, 윤씨의 참고인 조사 조서 등 각종 자료를 건너 받은 수원지검은 지난 11월19일부터 모든 기록물을 검토해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직접조사'는 결정된 바 없다며 선을 그었던 검찰은 지난 11일부터 형사6부장을 중심으로 형사6부(부장검사 전준철) 전담조사팀 6명을 구성, 본격 직접조사에 나섰다.
검찰은 최근 윤씨가 '수사촉구 의뢰서'를 검찰에 제출한 점과 연내 재심개시 결정 여부에 대한 의견을 법원에 제출하겠다는 이유를 근거로 대며 직접조사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8차 사건이 이춘재의 범행 여부를 판단하는 것보다는 윤씨가 이 사건의 진범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하는 것이 직접조사의 주된 목적임을 강조했다.
윤씨가 해당 사건의 범인인지 여부를 조사하고 만약 범인이 아니라면 왜 아닌지, 과거 수사관들의 과오가 있었는지 등을 차례대로 살펴볼 방침이라는 것이다.
검·경 갈등의 시발점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지난 11일 검찰이 8차 사건에 대한 첫 브리핑을 가진 바로 전날, 직접 대면조사를 위해 이춘재를 부산교도소에서 수원구치소로 이감조치 했다고 발표했는데 경찰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8차 사건이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는데 굳이 '중복수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특히 수사가 마무리가 안 된 시점에서 검찰이 먼저 '과거 수사관들의 가혹행위 정황 포착' '국과수 감정결과 조작' 등 굵직한 수사내용을 발표한 점도 갈등에 한몫을 더했다.
특히 국과수 감정결과 부분에 대해 검찰은 '조작'이라고, 경찰은 '오류'라고 주장하는 등 반박과 재반박이 오가며 갈등의 골은 더 깊어져 가고 있다.
이춘재의 이름과 나이는 다수 언론사에서 사용돼 왔지만 직접 공개한 수사기관은 지난 11일 검찰이 처음이다.
이후 그동안 '대상자'라고만 피의자를 지칭해 왔던 경찰도 지난 19일 처음으로 '이춘재'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동시에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불렸던 명칭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명명하기로 하는 등 미묘한 신경전도 나타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이번 8차 사건의 직접조사를 빌미로 경찰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을, 경찰은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각각 밝혔다.
◇"명예 되찾겠다"…30여년 만에 재심청구한 윤씨, 주목되는 재심 과정
"명예를 되찾겠다"는 말과 함께 윤씨는 지난 11월13일 재심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과거 변변한 변호의 조력 하나 없이 1~3심 모두 유죄를 받았던 윤씨는 억울한 한을 풀고자 33년 만에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수원지법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재심청구서를 접수한 법원은 '재심개시에 대한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취지로 수원지검에 의견을 요구했고 이에 검찰은 지난 23일 오전 윤씨의 재심청구권에 대해 '재심을 개시함이 상당하다'는 의견을 법원에 제출했다.
검찰은 형사소송법 제 420조 규정에 따라 Δ재심청구인 윤씨의 무죄를 인정할 새로운 증거(이춘재의 진범인정 진술) 발견 Δ윤씨에 대한 1989년 수사 당시, 수사기관 종사자들의 직무에 관한 죄(불법감금, 가혹행위) Δ윤씨에 대한 원판결에 증거가 된 국과수 감정서의 허위 확인등 총 3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재심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수원지법은 지난 24일 이같은 검찰의 의견에 따라 재심개시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년 1월께 내리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번 사건의 재심개시 결정 여부는 검찰의 항고 등 재심이 개시되는 과정만 하더라도 수년이 걸렸던 그간 재심사건의 경우와 달리 조속히 진행되고 있다.
재심개시 여부에 대한 결정을 조속히 하겠다는 데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이라는 점이 작용했지만 내년 2월에 있을 법원의 정기인사가 가장 결정적 이유로 꼽힌다.
재심이 결정되면 현재 이춘재 8차 사건에 대해 공판준비를 담당하고 있는 형사12부(부장판사 김병찬)가 맡을 공산이 크다.
법관 3명의 합의체로 구성된 형사12부도 이번 정기인사 대상이므로 현 재판부가 재심개시 결정만 내리고 후임자들이 정식공판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경 양측 모두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재심개시가 분명할 것이라는 예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재심개시 승인이 이뤄지면 이 사건으로 20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씨의 무죄입증을 위한 정식 심리가 열리게 된다.
통상 재심개시 여부 결정 전에는 사실조회 신청이 이뤄지고 재심을 청구한 윤씨와 이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불러다 의견을 듣는 등의 절차가 진행되지만 이번에는 간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사안이 높은 만큼 재심을 조속히 진행하겠다는 재판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서도 "아직 확정된 바는 없어 유동적인 문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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