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윤중로]성과주의에 밀린 상도덕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29 17:32

수정 2019.12.29 17:32

[윤중로]성과주의에 밀린 상도덕
성장에 집착하는 기업은 약간의 비윤리를 외면하기 쉽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선 상도덕으로 불리는 기업윤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기가 더욱 쉽다. 입시전쟁에서 공부 잘하는 자녀가 성품도 좋다면 최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1등만 한다면 조금 무례한 것에는 눈감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200여년 전통을 자랑했던 영국 베어링스은행이 한순간에 파산한 이유도 경영진이 직원들의 비윤리적 행동을 사소한 문제로 넘겨버린 데 있다. 지난 1995년 베어링스은행은 싱가포르 주재 파생상품 거래 담당직원의 투기적 불법거래로 인해 약 14억달러의 손실을 본 뒤 파산했다.

베어링스은행 경영진은 안팎의 경고나 각종 위험징후를 인식하고도 외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실화는 할리우드 영화 '겜블'로 제작됐다.

기업은 충성심 경쟁을 위해 도덕적 잘못을 단순 실수로 취급하거나 관대한 조치를 취하는 경향이 있어 유사한 사례가 반복된다.

최근 국내 금융권에서는 초고위험 펀드의 비상식적 판매가 벌어져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했다. 국내 대형은행들이 애널리스트 수준의 전문가도 다루기 힘든 초고위험 상품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를 회사의 승인 속에서 공격적으로 판매하면서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투자경험이 없고 난청인 고령의 치매환자에게도 상품을 판매한 사례가 있다.

비윤리는 첨단산업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코오롱생명과학 바이오신약 사태가 그랬다.

획기적으로 무릎관절에 효과적인 줄기세포 신약이 오히려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코오롱생명과학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사가 나오기 전까지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환자들은 수백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내고 암 유발 위험성이 의심되는 주사제를 맞았다. 하지만 허위자료를 제출해 허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개발에 참여한 회사 임원은 결국 구속됐다.

정부가 사용중단을 촉구한 액상형 전자담배 생산·유통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정부의 경고조치 이후 최대 판매처인 편의점들은 중증 호흡기질환 유발이 의심되는 액상형 전자담배 발주를 중단했다. 그렇지만 일부 편의점의 재고 판매는 계속됐다. 또 정부의 경고에도 담배회사는 자발적으로 판매중단 선언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배회사는 액상담배에 문제가 없으며, 편의점 발주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공장 가동을 멈출 뿐이라고 했다. 심지어 식약처가 검출한 액상형 전자담배 속 중증 폐질환 의심성분의 검출량이 미미하다거나 자체 실험에선 검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식약처의 실험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까지 보였다.

약간의 비윤리는 전문지식이 필요한 상품 속에 내재되면 적발하기 쉽지 않다.
사고가 터진 다음에는 무너진 댐처럼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했다고 자랑했던 가습기 살균제처럼 말이다.
기업들이 약간의 비윤리에 눈을 감고 성과주의에만 매달린다면 그 종착지는 파국이 될 수도 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생활경제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