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2019 올해의 인물 이재웅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30 17:33

수정 2019.12.30 17:33

정부·정치권 훼방에 맞서
혁신 옹호 줄기찬 목소리
새해에도 기개 이어가길
[곽인찬 칼럼]2019 올해의 인물 이재웅
2019년 최대의 뉴스메이커를 꼽으라면 조국 전 법무장관을 들 수 있겠다. 조 전 장관은 나라를 들었다 놨다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내재적' 친일파를 향해서 뽑은 죽창이 기억에 또렷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얼굴을 맞대면서 죽창론은 쏙 들어갔다. 조 전 장관은 강남좌파를 대표한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진보 지식인의 일그러진 모습은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조국에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뉴스메이커로 나는 이재웅 쏘카 대표를 꼽고 싶다. 종합 1위는 조국이지만 경제로 좁히면 단연 이재웅이 1위다. 이재웅은 아주 센 사람들과 그야말로 맞짱을 떴다. 한국적 풍토에서 일개 기업인이 부총리·장관·국회의원·주무부서를 상대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재웅은 이 금기를 깼다.

어록을 살펴보자. 먼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홍 부총리가 "기존 이해관계자의 반대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타다) 도입이 어려울 것"이라고 하자 이재웅은 "어느 시대 부총리인지 모르겠다"로 쏘아붙였다.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이 "무례하고 이기적"이라고 비판하자 대뜸 "갑자기 이 분은 왜 이러시는 걸까요? 출마하시려나"라고 비꼬았다.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의 김현미 장관,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도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재웅은 "박홍근 의원과 김현미 장관의 국토부는 타다가 붉은깃발법에도 불구하고 문 닫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타다금지법이 플랫폼 혁신 택시에 통로를 열어준 것이라는 주장엔 "야구선수를 지망하는 학생에게 축구를 하라는 격"이라고 일축했다.

나는 이재웅의 이죽거리는 말투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앞으론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 특히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들을 배려하기 바란다. 하지만 그가 대세에 올라탔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재웅의 가장 큰 후원자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1년)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말했다. 혁신은 파괴를 동반한다. 기득권층엔 미안한 얘기지만, 혁신이 구질서를 밀어내고 자리를 잡는 게 순리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도시국가로 한때 이름을 떨쳤다. 14세기엔 "파리에 견줄 만하고 런던에 비하면 세 배는 족히 되는 도시"로 떠올랐으나 지금은 "경제대국에서 박물관으로 전락"했다. 대런 애쓰모글루(MIT)와 제임스 로빈슨(하버드대) 교수가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한 말이다. 베네치아 정치를 장악한 귀족 등 기성 엘리트층이 젊고 혁신적인 기업인들의 등장을 막았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이 망한 과정도 엇비슷하다. 티베리우스 황제 때 깨지지 않는 유리를 발명한 사내가 의기양양 황제를 찾아갔다. 황제는 사내에게 "다른 이에게 보여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내가 "없다"고 하자 티베리우스는 사내를 죽이라고 명했다. 안 깨지는 유리 탓에 황금이 진흙의 가치로 추락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재웅은 타다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전망은 어둡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포용이 혁신의 기반"이라며 "안전판이 있지 않으면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반(反)이재웅 진영의 손을 들어준 격이다.
이재웅은 2020년에도 혁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부디 그러길 바란다. 그마저 입을 다물면 이 정부에서 혁신은 끝장이니까.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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