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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한국당은 탄핵당한 셈, 판단은 국민 몫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2 16:55

수정 2020.01.02 16:55

[여의도에서]한국당은 탄핵당한 셈, 판단은 국민 몫
2004년 3월 12일과 2019년 12월 27일.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 큰 변화를 알린 날로 꼽힌다.

15년여 전, 한나라당은 새천년민주당과 공조 아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42명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나서 국회의장석을 미리 점거했으나, 야당 의원들과 국회 경위들의 물리적 저지로 끌려나갔다.

일부 우리당 의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관용 국회의장을 향해 "박관용 의장은 역사 앞에 사죄하라" "의회 쿠데타를 중단하라"고 항의했다.

지난해 연말, 더불어민주당은 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과 함께 4+1 협의체 이름으로 합의한 준연동형 비례제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결시켰다. 108명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 시작 전부터 의장석을 점거했지만 국회 경위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문희상 의장을 향해 "문희상 역적"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항의했다.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선거법 개정안 통과 뒤 눈물을 흘렸다.

결국 역사는 재연됐다. 상대만 바뀐 채. 15년 전 민주당의 전신 '우리당의 눈물'이 있었다면, 현재는 한나라당의 후신 '한국당의 눈물'이 있었다는 게 차이다. 비유하자면, 한국당은 탄핵당한 셈이다. 수적열세를 외치며 국민 여론에 호소했던 '우리당'이 15년이 지난 현재 '한국당'으로 치환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당시 노 대통령 탄핵안에 서명한 한나라당 의원 수도 108명이었다.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결과다.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탄핵 역풍에 한나라당은 휘청였다. 이후 총선에서 우리당은 과반을 차지해 제1당이 됐다. 야당이었지만 기득권 세력으로 비쳐졌던 한나라당이 다른 야당과 연대해 노 대통령을 몰아내려 한다는 여론에 직면했다. 예상치 못한 탄핵 역풍에 한나라당은 천막당사까지 가는 고난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그럼 이번 선거법 개정안은 어떨까.

선거법 개정안 통과로 정치 지형은 꿈틀거릴 수 있다. 기득권이던 거대 양당 구조가 깨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바뀐 선거법은 여당을 비롯해 정의당 등 범여권에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민생경제가 좀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남북관계도 꼬이고 있다. 제대로 된 결과물은 없이 선거법만 바꾸는 정치 싸움에 민심은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

당한 만큼 돌려주는 정치가 일상화되면서 협상은 사라졌다. 합의를 이끌 생각은 없고 복수만 남은 권력 다툼에 민심은 어디를 택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판단은 국민 몫이다. 민주당이 선거법을 강행처리했는지, 한국당이 억지로 막았는지는 국민들이 판단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론은 민감하게 움직인다.

15년 전에는 "너희들이 뭔데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끌어내리냐"는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
이번에도 과연 반감이 작용할지 지켜보자.

거센 탄핵 역풍 속에 헌법재판소가 노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했듯, 국민들이 한국당에 대한 탄핵안을 기각할지는 한국당에 달렸다.

지난 1년여간 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보여준 시간 끌기, 단순 반대와 같은 무능은 뛰어넘어야 한다.
중요한 순간마다 튀어나오는 과거로의 회귀와 지루한 보수통합 논쟁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당에 대한 심판은 여당 심판보다 선결과제가 될 수 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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