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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이슬람 시아파·수니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6 16:38

수정 2020.01.06 16:38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망(632년)하자 후계자 자리를 놓고 내분이 일었다. 초기 칼리프 네 명 중 세 명이 암살당할 만큼 갈등이 컸다. 4대 칼리프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곧 무함마드의 사위다. 알리를 따르는 무리는 다른 칼리프들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알리만을 따랐다. 이들을 시아파라 부른다.

아랍어로 시아(Shia)는 추종자란 뜻이다. 반면 칼리프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이들은 주류 수니파가 됐다. 수니는 수나(Sunnah)에서 나온 말로, 무함마드의 언행을 본받는 무리란 뜻이다.

이슬람 세계에선 수니가 다수파다. 세계 무슬림 열 명 중 여덟아홉은 수니파다. 메카·메디나 성지를 둔 사우디아라비아가 종주국이다. 시아는 소수파다. 이란이 종주국이고 이웃 이라크에도 시아파가 7대 3 정도로 많다.

이라크는 좀 묘하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소수 수니파 출신으로 다수 시아파를 억압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란혁명을 진두지휘한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한때 후세인의 후원 아래 이라크 나자프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나자프는 시아파의 성지로 알리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호메이니가 이라크 내 시아파를 부추기자 후세인은 1978년 그를 프랑스로 추방했다. 이듬해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호메이니가 전권을 장악하자 두 나라는 원수가 됐다. 1980년에 터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8년간 지속됐다. 이때만 해도 미국은 후세인 편에 섰다.

그러나 1990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전쟁이 터지면서 미국과 이라크는 적이 됐다. 후세인은 생포됐다. 그가 처형당한 뒤 이라크에선 시아파가 득세했다. 현 아딜 압둘마흐디 총리도 친이란 시아파다.

연말 연시 미국과 이란이 한판 붙을 태세다.
이라크 내 미군기지와 대사관이 위협을 받자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인 솔레이마니를 드론으로 살해했다. 미국은 후세인을 제거했지만 더 큰 골칫거리를 키웠다.
종교에 종파까지 뒤섞인 중동 사태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