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북한 100℃]"코카콜라 광고 싫증나던가요"…선전구호 이해하기

뉴스1

입력 2020.01.18 08:00

수정 2020.01.18 08:00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소식이 실린 신문을 보고 있는 북한 가정.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일 보도했다. 북한은 새해 들어 주민들에게 '전원회의' 결정 관철에 매진할 것을 연일 독려하고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소식이 실린 신문을 보고 있는 북한 가정.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일 보도했다. 북한은 새해 들어 주민들에게 '전원회의' 결정 관철에 매진할 것을 연일 독려하고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의 스틸컷. 감독 안나 브로이노스키가 리관암 감독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쓴 '영화와 연출'에 대해 묻고 있다.(독포레스트 제공)/© 뉴스1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의 스틸컷. 감독 안나 브로이노스키가 리관암 감독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쓴 '영화와 연출'에 대해 묻고 있다.(독포레스트 제공)/© 뉴스1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포스터.(독포레스트 제공)/© 뉴스1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포스터.(독포레스트 제공)/© 뉴스1


[편집자주][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비정치적인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1월 2일 자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 젊은 아들은 TV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고 노동신문을 양손에 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TV에는 새해 첫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구호 '우리의 전진을 저애(저해)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 돌파전으로 뚫고 나가자'라는 자막이 떠 있다. 이 모습. 연출일까, 진짜일까.

북한 미디어에 등장한 사람들을 보면 그 말과 행동이 진심일까, 진짜일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현재 주어진 모든 게 '위대한 영도자' 덕분이며 앞으로 북한의 미래 또한 '위대한 영도자'에 달렸다는 그들의 확신에 찬 말은 우리로선 쉽게 믿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정말 단단히 세뇌되었거나 아니면 겉으로만 그럴 뿐 진심은 어딘가 꽁꽁 숨겨두었을 거라고 여기게 된다.

북한 사람의 이미지는 이제 '뿔 달린 사람'에선 벗어났지만 그들에게 숨겨진 진심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75년이 지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다섯 번의 정상회담에도 아직 우리에게 북한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우리는 북한 매체에서 보여주는 그들을 볼뿐 그들의 일상까지는 접근하지 못한다.

미지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은 북한 여행과 취재가 일부 허락된 외국인이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라는 북한에, 똑같은 표정의 어린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며 지도자를 찬양하는 그곳에 관심을 보이며 신변 안전에 대한 '위험 신호'를 무릅쓰고 기어이 모험을 택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이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이나 영상 정도로 그들의 일상을 가늠해 볼뿐이다.

2013년에 나온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이하 '안나')는 흔히 보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시선을 가진 영화다. 호주인 감독 안나 브로이노스키는 다국적 기업이 호주에서 대규모 탄층 가스 채굴을 시도하자 그 위험성을 알리는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선전영화의 최고봉인 평양을 찾는다.

그는 2012년 9월 3주 동안 평양에서 유명 북한 영화감독들과 배우, 작곡가를 만나 그들의 영화 제작 기법을 배우고 시드니로 돌아와 그들의 가르침에 따라 단편 선전영화 '정원사'를 만들었다. 영화 '안나'에는 이 과정이 담겼다.

우리가 접해 온 북한 관련 영상 대부분이 북한 체재의 '악함'을 고발하거나 혹은 그곳에서 억압받으며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피해자'로서 초점을 맞추거나, 북한을 '이상한 나라'로 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나의 접근법은 여기서 조금 비켜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안나는 북한 사람들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기획 의도 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안나가 "기후변화에 대해서 아세요?"라고 묻자 북한 영화계의 원로인 박정주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달나라 사람으로 생각하나 봐"라고 받아친다. "감독님 영화에 섹스신도 있나요"라는 질문엔 "70편을 만들었지만 섹스 장면을 한 번도 못 해봤다. 안나는 포르노를 좋아하나?"라고 되묻는다. 박 감독도 "오스트레일리아에도 술주정뱅이가 많나"라며 관심을 보인다. 영화를 고리로 유연한 대화와 농담이 오가고 거기서 그들의 여유 있는 표정이 나온다.

안나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사상교육을 받는 중에 통역사가 "김정일이 죽었을 때 모두가 극도의 슬픔을 느꼈다"라고 하자 안나는 "진짜로 슬퍼한 건가요?"라고 되묻는다. 통역사는 당연하다는 듯 "진심으로 슬픔을 느꼈죠. 억지로 꾸며낸 게 아니에요"라고 단호하게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찾았다는 식당에서 안나가 "북한 사람들은 굶주리는 줄 알았는데요"라고 묻자 통역사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고 만다. 그 외에도 안나는 "북한도 선거를 하나요" 같은 평범하지만, 그 세계에서는 평범할 수 없는 질문을 그곳의 사람들에게 계속 던진다.

안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한 호주 배우가 북한의 선전영화를 보며 "비슷한 영화가 계속되면 싫증을 느끼지 않나요?"라고 묻자 안나는 "콜라 광고가 싫증 나던가요"라고 되묻는다. 또 "이들은 종교가 있나요?"라는 물음에 안나는 "그들의 사상이 종교죠"라고 답한다. 곳곳에 나붙은 '체제 선전 구호'가 우리의 상업 광고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영도자에 대한 찬양과 믿음' 또한 종교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시선이다.

지난 2018년 영화 개봉에 맞춰 방한한 안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이 그들의 최고지도자에게 세뇌당했다면 우리도 자본주의나 다국적 기업의 마케팅에 세뇌된 것 아니냐'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북한 주민의 평범한 일상과 북한 영화인의 열정도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물론 안나가 북한 체제의 잔혹성을 몰랐을 리 없고, 선전영화가 북한 주민들의 눈을 가리는 데 활용된다는 것을 간과했을 리 없을 테다. 다만, 그는 어떻게든 북한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자 그들과의 접점을 찾으려 애썼던 것 같다.

북한 체제를 고발하는 영화나 인권 영화가 의미 없다거나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속의 북한 사람의 이미지는 그들의 미디어를 통해서 보이는 것만큼 일관되고 평면적이라는 한계 또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그들의 '진심'을 의심하는지도 모른다.
비록 북한 당국의 검열을 거친 후일지라도 그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여러 면을 볼 기회가 많아진다면 '진실'에 대한 접근은 정답을 고르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퍼즐을 맞추듯 한 발 한 발 가까이 다가가는 문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