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정도에서 벗어난 文정부의 기업정책

시행령 바꿔서 밀어붙여
재계 반발에도 마이동풍
재계가 반대하는 시행령 개정안이 21일 한꺼번에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상법 시행령 개정안,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그것이다. 이들 '반기업 3령'은 내용과 형식 모두 문제다. 가뜩이나 기가 죽은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더 얼어붙게 생겼다.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사외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지금은 상장사 자율에 맡겨져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사외이사 임기 제한이 과잉 규제라고 반발한다. 해외 사례도 없고 사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당장 기업들은 올 3월 주총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상장사들이 새로 뽑아야 할 사외이사가 700명이 넘는다. 시장은 정치권 낙하산이 무더기로 내려오지 않을까 의심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국민연금에 대해 5% 룰 적용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길을 더 넓게 열어준 셈이다. 새 시행령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해임청구권을 '경영참여'에서 제외했다. 소가 웃을 일이다. 임원 해임청구권이 경영참여가 아니면 뭐가 경영참여란 말인가. 재계는 3월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경영간섭이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우려한다.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문제다. 문재인정부는 전임 정부의 '시행령 통치'를 답습하고 있다. 사외이사 임기 제한, 5% 룰 완화 등은 기업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중대한 변경은 시행령이 아니라 국회에서 법률을 개정하는 게 맞다. 시계추를 5년 전으로 돌려보자. 당시 정치권은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팽팽히 맞섰다. 국회는 행정부 시행령이 입법 취지에 어긋날 경우 국회가 수정·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행정입법권을 침해했다"고 화를 냈다. 그러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정부가 시행령을 만들 때 법의 취지를 존중하고, 법률이 위임한 범위 내에서 시행령을 만드는 노력부터 먼저 하는 것이 순서"라고 맞받았다.

문재인정부의 시행령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야당을 설득해 원칙대로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생각은 안 하고, 손쉽게 시행령을 고치려 든다. 시행령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부가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 야당 핑계를 대는 건 스스로 능력 부족을 자인하는 격이다. 문재인정부의 기업 정책은 정도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