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열심히'는 하는데 '잘 못하는' 정부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28 17:31

수정 2020.01.28 17:31

[이구순의 느린 걸음] '열심히'는 하는데 '잘 못하는' 정부
"'열심히'는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내가 필요한 것은 '잘'하는 것이야. 잘해줘." 함께 일하게 될 새 직원들에게 하게 되는 당부다. 새 직원들은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다. 그런데 진심으로 내가 필요한 것은 잘하는 직원이다.

'다보스포럼'이라고 부르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주요 국가의 금융당국과 학계가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암호자산에 대한 규제와 관리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암호화폐 거버넌스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했다. 우선 오는 4월에 암호화폐 거버넌스 문제를 다룰 국제 기술 거버넌스 서밋을 열어 컨소시엄의 활동계획을 밝히기로 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 일본 등 6개국 중앙은행은 디지털통화(CBDC)를 연구하는 싱크탱크를 설립하기로 했다.
유럽중앙은행을 비롯해 영란은행, 일본은행, 캐나다중앙은행, 스웨덴국립은행, 스위스국립은행 등 6개국 중앙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도 싱크탱크에 참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블록체인 정책자문위원회(Blockchain Expert Policy Advisory Board)를 발족했다. 각국 규제당국과 기업, 시민단체 인사 93명으로 구성된 블록체인 정책자문위원회는 OECD 가입국을 대상으로 블록체인정책 수립에 대해 조언한다. 이 자문회의에는 우리나라도 참여하고 있다.

올해 1월 한달 새 들려온 암호화폐 관련 국제 정책연구와 협력활동 상황이다. 꽤 굵직한 국제기구들이 암호화폐 정책연구 계획을 내놨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연구과제가 구체화됐다. 블록체인 기술, 금융 등 기존 산업과의 융합 같은 다소 광범위한 과제들이 올해부터는 세분화됐고 실질적으로 정책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정책에서 우리 정부와 기관들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은 똑 부러지게 내놨었다. 2017년 말 국무조정실 주도로 법무부, 금융당국이 모여 암호화폐 시장 혼란을 감시하고 대책을 제시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고, 한국은행도 2018년 연구TF를 꾸려 공부를 시작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2018년 1월 '가상화폐 대책 TF'를 구성해 암호화폐 규제책과 신기술 지원방안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그 많던 TF들의 결과물은 눈에 띄는 게 없다. 정부도 기관도 열심히는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스스로 자랑하는 것처럼 발 빠른 암호화폐공개(ICO) 금지정책은 그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후한 평가를 하기는 어렵겠다. ICO라는 빈대를 잡자고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을 키울 초가삼간도 모두 태워버린 셈이 됐으니 말이다. 또 TF들이 만들어진 지 2년이 지났지만 우리 정부의 공부 결과는 여전히 '암호화폐는 위험하다'는 것뿐이니 말이다.


내가 바라는 직원의 모습과 국민이 바라는 정부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열심히 하는 것은 정부 몫이고, 국민의 평가는 잘했느냐일 것이다.
올해는 '열심히'보다 한발 나아가 '잘'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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