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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복지]기간제교사=가짜선생이라는 현실…블랙독 고하늘이 쏘아올린 작은 공

tvN 드라마 '블랙독' 기간제 교사 '고하늘' 오직 실력으로 승부해도 높은 정교사 벽 심화반 운영 등 학교 안 성적으로 차별도 인권위"기간제교사 신분차별"…시정권고
[서울=뉴시스] 블랙독(사진=tvN 제공) 2019.11.2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블랙독(사진=tvN 제공) 2019.11.21 photo@newsis.com
[세종=뉴시스]이연희 기자 = "아드님 진짜 선생 아니에요. 김영하 선생, 기간제예요."

"그게 뭐꼬?"

"계약직 선생이라고요. 보험금 얘기 자꾸 하시는데 그럼 어떻게 합니까, 법이 이런데."

"그럼 우리 남편 지금까지 싼 맛에 불러다 일 시켰다 이겁니까. 아무리 돈도 좋고 편하다 해도 그렇지, 어느 나라 법이 계약직 선생까지 만들어서 애들 가르치라 하나. 우리 남편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죽었어예."

종영까지 2회분을 남겨둔 티비엔(tvN) 월화드라마 '블랙독'의 주인공 고하늘(서현진)은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버스 전복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 했다. 그를 구하러 온 김영하(태인호) 선생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김 선생은 뒤늦게 버스에서 탈출하다 폭발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고하늘은 생명의 은인이자 마음의 빚을 진 선생님의 빈소를 찾았다가 김 선생이 기간제 교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짜 선생'이 아니라고, 또 사망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사학법인 측의 냉정한 말도 듣는다. 유족과 학교측의 대화에는 기간제 교사의 현실이 그대로 함축돼 있다.

"무엇때문에 내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걸까." 고하늘은 스스로 질문의 해답을 찾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교사의 길을 걷는다.

11년 후, 고하늘은 서울 대치동 한 사립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다. 공립고등학교 정교사가 되려면 임용고시를 반드시 통과해야 하지만 사립고등학교는 기간제나 정교사 모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갖추고 학교별 자체시험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사범대 졸업생들은 사립학교 기간제교사로서 경험을 쌓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곤 한다.

임용고시 경쟁률도 높지만 기간제 교사 경쟁률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교육청의 2020학년도 중등임용고시 일반전형 국어과 경쟁률은 18.9 대 1. 고하늘이 지원한 사립학교는 국어과 교사 1명을 뽑는데 지원자는 101명에 달한다. 실제로 대도시 사립학교는 경쟁률만 100 대 1이 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그렇게 뽑힌 전국의 기간제 교사는 지난해 5만4539명(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이다. 중학교는 전체 9만3667명 중 1만6889명(18%), 고등학교는 전체 11만1069명 중 2만2058명(19.8%)이 기간제 교사이고 그 비중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사립학교들은 1년 단위 외 한달 단위부터 방학을 제외한 학기 단위까지 쪼개기로 뽑기도 해 일자리가 불안정한 처지다. 그나마도 기간제교사를 선발한다며 경력을 강조하는 학교, 내정자 논란까지 불투명한 채용절차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고하늘은 마지막 수업 시연 단계에서 실력을 입증한 뒤 기간제교사로 발탁되지만 정교사와는 태생적으로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고하늘의 교과 파트너인 정교사 김이분(조선주)은 고하늘에게 수업용 자료를 모두 만들도록 떠넘기고, 진도도 마음대로 정한다. 갑질이다.

이는 기간제 교사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기도 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2018년 기간제 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명 중 3명은 다른 교사가 기피하는 업무를 요구받는 식으로 차별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기간제 교사 2명 중 1명은 담임업무도 맡고 있다. 학생들조차 자신을 가르치는 교사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알지 못할 만큼 동일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기간제 교사는 동일임금이나 복지, 처우를 보장받지는 못하는 현실이다.

1년 후 국어과 정교사 1명을 선발하는 시험에서 고하늘은 6년째 대치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해온 지해원(유민규)과 경쟁한다. 고하늘은 필기에서는 1위를, 지해원은 면접에서 1위를 차지하며 마지막까지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tvN 새 월화드라마 '블랙독' 스틸컷 (사진=tvN 제공) 2019.11.20.suejeeq@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tvN 새 월화드라마 '블랙독' 스틸컷 (사진=tvN 제공) 2019.11.20.suejeeq@newsis.com
진학부장 박성순(라미란)과 교무부장 문수호(정해균)는 고하늘의 진면목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지해원을 추천한다. 이들은 같은 이유를 든다. "그게 6년 동안 살기 위해 버텨온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럼에도 결과는 '적격자 없음'. 한 자리가 절실한 지원자들과는 달리 학교의 판단은 너무나 쉽고 단호할 뿐이다. 지해원은 떠나고, 고하늘은 학교에 남아서 1년 더 기간제 교사 생활을 이어간다.

고하늘이 맡아 1년간 키웠던 동아리, 사실상 상위권 심화반인 '이카로스'를 20명에서 50명으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중하위권 학생들의 반발도 커진다. 자습실에 우유테러를 벌이다 잡힌 학생들은 교사에게 혼나면서도 할 말은 한다. "차별하잖아요. 우리 존재감 없다고 신경도 안 쓰고, 거기 못 들어간 우리 같은 애들은 쳐다도 안 보시잖아요." 교사 계급을 관찰하던 시선이 학생 간 계급으로 옮겨가는 순간이다. 관심 받지 못하는 보통의 아이들에게 차별은 세대를 넘어 물린다.

드라마 제목인 '블랙독'은 단지 검다는 이유로 검은 강아지를 기피하는 편견을 말한다. 고하늘은 과거 할아버지를 따라 강아지를 사러 갔다가 유독 눈을 빛내며 꼬리를 흔드는 검은 강아지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할아버지는 "검은 강아지는 재수가 없다"며 막는다.

'블랙독'은 정교사가 아니라고 해서 실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또 성적이 낮은 학생이라는 이유로 성장 가능성을 제한해야 하는 것인지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한 번 더 묻는다. 언제까지 학교 곳곳에 깃든 차별을 방조할 것이냐고 말이다.

고하늘은 졸업한 첫 제자들을 배웅한 뒤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 하고 부르고 떠나던 이 순간에 나는 진짜 선생님이 됐다"고 말한다. "이제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기간제와 정교사 틀이 더이상 나를 흔들 수 없다는 확신도 함께 들었다"고도 말한다.

각각의 위치에서 작은 파동을 일으키려는 수많은 ‘고하늘 쌤'들이 모여서 큰 물결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제도적으로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 간 차별이 해소되려면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하다 희생당한 고(故)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뒤늦게야 순직 인정을 받았지만, 기간제라는 이유로 사망보험금은 법원이 끝끝내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판결했다.

국회에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016년 국회의원 시절 기간제 교사 등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내용의 교육공무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교사 및 교사 지망생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나흘만에 철회한 일도 있었다.

더디지만 개선은 이뤄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해 12월 기간제 교사 관련 차별적 제도를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교원의 맞춤형 복지점수 산정 시 기간제 교사에게만 근무연수나 부양가족 수에 따른 변동복지점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을 비롯해 호봉 제한, 포상 배제 이유가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교육부에 시정을 권고했지만 교육부는 소극적이다. 기간제 교사 문제가 각 시도교육청 소관이라는 이유에서다. 교육청들은 올해 인권위 권고대로 맞춤형복지점수 차등지급을 폐지하고 정근수당 지급이나 휴가 인정 관련 17개 시도가 공통으로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학교는 미래 세대에게 지식을 전수할 뿐 아니라 그 사회의 중요한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앞으로 학생 한 명 한 명의 소질을 발굴하려면 교사의 역할은 멘토이자 지원자에 가깝게 된다. 향후 20~30년 뒤를 내다보고 교원수급·양성제도와 맞물려 근본적으로 기간제 교사 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dyhlee@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