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기업은행發 '노조추천이사제' 금융권 확산되나

뉴스1

입력 2020.02.02 06:35

수정 2020.02.02 06:35

지난 2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윤종원 IBK기업은행장과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이 만나 노사 공동선언에 합의했다.(기업은행 노동조합 제공) © 뉴스1
지난 2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윤종원 IBK기업은행장과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이 만나 노사 공동선언에 합의했다.(기업은행 노동조합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김도엽 기자 = IBK기업은행 노사가 '노조추천이사제'를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하면서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움직임이 확산될지 주목된다. 최근 수출입은행 노조의 시도가 기획재정부에 의해 좌절되는 등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노조추천이사제가 번번이 무산됐었다.

노조 측은 노조추천이사제를 통해 방만한 경영을 견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노조 측의 과도한 경영 개입으로 빠른 의사 결정이 어려워져 오히려 경쟁력 저하를 불러온다는 반대 논리도 강하게 제기된다.


윤종원 기업은행장과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은행은 노조추천이사제를 유관기관과 적극 협의해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은 노사 공동 선언문을 합의했다.

당초 윤 행장은 노조추천이사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노조의 장기 출근 저지 투쟁을 풀기 위해 양보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 행장은 지난달 3일 임명된 이후 노조의 저지로 26일간 기업은행 본점 사무실로 출근하지 못했다.

금융권 노조가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열을 올리는 것은 문 대통령이 임기 내 100대 국정과제에 노동이사제를 포함한 것과 무관치 않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 구성원으로 발언권과 의결권을 가지고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다만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려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이 필요하다. 법률에는 공공기관 이사의 자격이 '경영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에서 선임한다'고 명시됐다. 이에 교수나 변호사, 회계사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이사로 선임되는 등 주로 경영자 측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에 비해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의 추천을 받은 인물이 사외이사로 선임돼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어서 노사가 합의하면 도입할 수 있다. 노조 입장에서는 공운법 개정이 필요한 노동이사제와 달리 노조추천이사제는 경영 참여에 상대적으로 쉬운 접근법인 셈이다.

그간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논의는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꾸준히 나왔으나 성사된 사례는 없다. 지난해 2월 기업은행 노조가 박창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을 신임 사외이사로 추천했으나 선임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산업은행도 꾸준히 시도했으나 선임까지 이어진 사례는 없다.

지난해 말 수출입은행 노조는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두 자리 중 한 자리에 노조 추천 인사를 앉히려 했으나 역시 불발됐다. 사측 추천 3명과 노조 추천 1명을 기획재정부에 제청했으나 노조 추천 인사는 배제됐다. 지난달 20일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수은에 기여할 수 있다면 노조추천 인사도 사외이사 후보군으로 열어놓겠다고 했으나 따로 할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시중은행에선 KB금융지주 노조가 지난 2017년부터 3년 연속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했지만 주주총회에서 과반 찬성을 얻지 못했다.

노조 측은 노조추천이사제를 통해 경영진의 경영을 감시하고 직원의 입장을 더 대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노조의 참여로 '거수기'와 '깜깜이'로 대표되는 이사회를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치'라는 말과 함께 노조의 과도한 경영 개입 우려도 나온다. 특히 주주가 아닌 노조가 경영에 개입할 경우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 기획재정부가 기업은행 지분 53%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지만 나머지 지분은 일반 주주들이 갖고 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외이사 구성의 다양화와 노동자의 후생을 생각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면서도 "다만 노조 추천 인사는 주주의 이익보다는 노조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할 수 있어 주주 이익 침해 소지가 있다"고 했다.

기업은행 사외이사는 은행장이 제청하고 금융위원장이 임명한다. 노조추천이사제와 성격은 다르지만 노동이사제에 대해 최종구 전임 금융위원장은 "법으로 공공기관에 먼저 노동이사제 도입을 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9일 노조추천이사제에 대해 "당장 (도입)하는 건 아니다. 지금 답하기보단 시간적 여유를 두고 고민해보겠다"며 도입 가능성을 닫지 않았다.


기업은행 사외이사는 총 4명(김정훈·이승재·신충식·김세직 이사)으로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는 없다. 이중 김정훈 사외이사는 과거 한국금융연구원 노조위원장 출신이기도 하다.
당장 기업은행에 노조추천이사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없지만 향후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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