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거래처명단·원가·핵심기술 빼돌렸는데… 처벌은 고작 벌금형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2 17:37

수정 2020.02.03 18:37

[中企 영업비밀 유출, 막을 수 있다](上) 침해 사례
2017년 1022억·2018년 1119억
영업비밀 피해규모 해마다 늘어
고소해도 유출자 솜방망이 처벌
피해입증 못하면 보상도 못받아
중소기업은 영업비밀 유출로 쉽게 무너진다. 영업비밀에는 거래처 정보 같은 경영정보와 부품설계 같은 기술정보가 포함된다. 파이낸셜뉴스는 중소기업 영업비밀을 주제로 세 번에 나눠 첫째 영업비밀 침해 사례와 현황을, 둘째 영업비밀이 침해되는 원인과 대책을, 셋째 중소기업 영업비밀에 대한 정부 역할과 법률 정비 필요성에 대해 분석한다.
거래처명단·원가·핵심기술 빼돌렸는데… 처벌은 고작 벌금형

중소기업 영업비밀 침해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막대한 소송비용을 감수하며 법정에 서도 해결은 어렵다. 영업비밀 침해를 입은 뒤 형사 고소를 해도 비밀 유출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민사상 손해배상액도 실제 피해 규모를 입증하기 어려워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에 관한 법률은 '영업비밀'을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비공지성)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비밀관리성)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경제적 유용성)라고 정의한다. 특정 기업정보가 법률상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위해선 위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전 회사 정보 빼돌리면…큰 피해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커피 생·원두를 유통하는 중소기업 A사는 경쟁사 B사와 전 직원 C씨를 각각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누설 등) 혐의로 고소했다. C씨는 2018년 A사를 퇴사하면서 A사 거래처 명단, 원두 단가 등이 담긴 파일을 이동식저장장치(USB)에 옮겨 B사로 이직한 뒤 이를 업무에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B사도 A사 파일을 부정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C씨에 대해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A사 영업비밀 파일을 사용했다"며 벌금 500만원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검찰은 B사에 대해선 "C씨가 B사에 보고하지 않고 자신 업무에 사용한 사안으로 B사가 C씨 위법행위를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기소유예했다.

A사 관계자는 "커피회사에 거래처 정보는 핵심비밀이다. C씨가 영업비밀을 들고 회사를 나간 이후 A사 2018년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47억원이 줄었다"며 "회사는 수십억원 매출 피해를 봐서 상황이 어려운데 영업비밀 가해자는 벌금 500만원을 받았다. B사는 기소조차 되지 못했다. 피해자만 억울하다"고 말했다.

■민형사상 해결 어려워

중소기업 영업비밀 침해를 입는 규모는 점점 커진다. 중소벤처기업부가 표본을 추출해 최근 3년간 중소기업 기술침해 피해를 조사한 결과 총 피해금액은 2016년 1097억원(피해기업 52곳), 2017년 1022억원(52곳), 2018년 1119억원(32곳)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중기부에 중소기업기술 침해행위 행정조사로 신고된 사건(2018년 12월 시행)은 총 17건이다.

피해는 크지만 법적 해결은 쉽지 않다. 형사처벌 대상인 영업비밀 침해자에 대한 처벌이 약한 데다 민사상 손해배상액도 실제 피해액보다 적게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2019 검찰연감'에 따르면 2018년 부정경쟁방지법(영업비밀누설 등) 위반 사건은 1072건이 접수돼 76건이 기소됐다. 검찰이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본 사건은 전체 7.1%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영업비밀 침해 사건이 기소되기 어려운 이유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이 엄격하다고 말한다.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이란 기업정보가 법률상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위해선 △비공지성 △비밀관리성 △경제적 유용성 세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중소기업 법률지원 재단법인 경청 이민주 변호사는 "부정경쟁방지법 불기소율이 높은 건 영업비밀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비밀관리성이란 정보에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시를 하는 등 정보가 비밀로 관리되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며 "인적·물적 부족을 이유로 영업비밀 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 정보는 비밀관리성이 없다고 판단돼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영업비밀 침해로 얼마나 손해를 입었는지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형준 법무법인 매헌 변호사는 "영업비밀은 가격을 따지기 어렵다. 가령 도면이나 프로그램 같은 건 가격이 존재할 수 있지만 거래처 정보, 원가 정보 등 데이터가 유출됐을 때 얼마만큼의 손해를 봤는지 입증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특허청 산하 영업비밀보호센터 지광태 센터장은 "현행법은 손해액 산정이 이익액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매출이 없는 경우 영업비밀을 유출한 경우 손해액 산정이 곤란하다. 손해액 산정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며 "특히 연구개발(R&D) 단계에서 영업비밀이 침해됐을 때 손해액 산정이 어렵다.
실제 판매나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서다"라고 말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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